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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8:15-23 본문
에스라는 사람들을 아하와 강가에 모은 후 레위인을 찾았지만 무리 중에서 찾을 수 없었다(15절). 그는 족장들을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 느디님 사람들의 족장 잇도에게 사정을 설명하게 했다(16-17절). 그들은 성공적으로 레위인들을 여럿 데려올 수 있었다(18-20절). 이 첫 번째 이야기는 에스라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율법대로 성전을 재건하려면 레위인들이 필수적이었지만, 함께 떠날 무리 중에는 레위인이 없었다. 이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전부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동시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에스라는 "족장"들(16절), 즉 높은 사람들을 보내 느디님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이 족장 명단은 바로 직전 본문인 2-14절의 족장들과 전혀 겹치지 않는다. 유력한 족장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18절)으로 그들은 여러 레위인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마주친 어려움은 험한 행로였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에는 "대적"이 있었고 "매복한 자"가 있었다(스 8:31). 에스라는 왕에게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했기에 차마 호위병을 붙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22절). 그래서 그는 대신 하나님께 금식하며 간구했고(21절), 함께 떠날 무리도 여기 동참했다(23절). 이 두 번째 어려움 역시 하나님의 "응낙하심"으로 잘 타개할 수 있었다(23절).
지금까지 에스라는 큰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의 지원을 얻었고 사람들을 모았다. 오늘 본문은 그런 에스라에게 닥친 어려움과, 그 어려움이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두 어려움에서 그들이 보인 태도가 전혀 다른 것 같다는 점이다. 첫 번째 어려움에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방법을 강구했고, 그대로 시행에 옮겼다. 반면 두 번째 어려움에서 그들은 왕에게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에만 전념했다.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그 모든 해결 과정의 궁극적인 주관자로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다(18, 23절).
이것이 신앙인이 가져야 하는 삶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문제들, 심지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대할 때,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기대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생각해 본 후 최선의 길을 선택해 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삶, 그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계획과 내 능력을 다해 이룬 일은 내가 한 일이라고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지혜롭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고백한다. 나 또한 그런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약 4: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