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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4:1-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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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4:1-14

로보스 2017. 9. 12. 11:40

요아스는 왕위에 올라(1절) 여호야다의 섭정 아래에서 선정을 베풀었다(2-3절). 요아스는 성전을 보수하고자 했는데(4-5절) 일이 빨리 진척되지 않자 여호야다를 재촉하였다(6-7절). 그리고 성전 수리를 위한 세금을 거두는 궤를 만들어 성전 앞에 두었고(8-9절) 백성은 기꺼이 돈을 바쳤다(10절). 많은 돈을 거두어(11절) 전을 보수하고(12-13절) 성전 기물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였다(14절).


오늘 본문은 왕하 11:21-12:16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데, 사뭇 그 강조점이 다르다. 먼저 여호야다 영향력 하의 요아스 치세를 요약한 1-3절을 보면, 열왕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흠이 있었음을 말하는 반면(왕하 12:3), 역대기는 마치 요아스가 온전히 선한 왕이었던 것처럼 기록한다(2절). 그리고 여호야다의 가문에 사위가 된 것도 추가되어 있다(3절).


이후 성전 보수에 관한 본문에서 두 본문 간 차이점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우선 성전 보수의 필요성에 대해 열왕기는 침묵하는 반면 역대기는 아달랴 치세의 악행에서 그 필요성을 찾는다(7절). 처음에 수리 비용을 마련하는 장면도 꽤 다른데, 열왕기는 성전에 드리는 은을 개별적으로 받아 수리를 시작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23년이 지나도록 수리가 되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반면(왕하 12:4-6), 역대기는 유다 성읍에서 돈을 거두라고 명을 내렸으나 돈이 잘 걷히지 않았다고 증언한다(4-5절). 이 강조점의 차이는, 성전에서 거둔 돈이냐 유다 각 성읍에서 거둔 돈이냐에 있는 듯 하다. 즉, 역대기는 수리 비용을 마련하는 일이 유다 전국에서 이루어졌지만, 체계적으로 거두지 못해 실패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하는데(6절, 왕하 12:7), 그 대안으로 성전세를 모으는 궤를 만들어 성전 앞에 두기로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열왕기는 그 주체로 여호야다를 제시하는 반면(왕하 12:9), 역대기는 요아스를 제시한다(8절). 이로써 요아스가 여호야다 생전과 사후에 보인 태도의 전환이 더 극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역대기는 성전세의 근거를 율법에서 찾는다(6, 9절). 또한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꺼이 성전세를 냈다고 기록하는데(10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개혁 운동이 전국적이었음을 암시하는 장치로 보인다.


나머지 부분은 두 본문이 표현은 좀 다르나 내용상 많이 유사하다. 즉, 돈이 쌓이면 왕과 대제사장 혹은 그들의 대리인이 와서 그 돈을 꺼냈고(11절, 왕하 12:10), 그 돈은 성전을 수리하는 데(12-13절, 왕하 12:11-12) 사용되었다. 흥미롭게도, 열왕기는 그 은은 성전 기물을 마련하는데 쓰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반면(왕하 12:13-14), 역대기는 남은 은으로 성전 기물을 마련했다는 기록을 전한다(14절). 그리고 여호야다가 평생 성전에서 번제를 드렸다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14절).


오늘 본문을 열왕기와 비교해서 읽으면서 역대기의 강조점들을 재발견한다.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 성전은 (톰 라이트의 표현대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었다. 성전은 악한 왕 아래에서 훼손되고 무너지지만(7절), 선한 왕이 즉위하면 보수되고 채워진다(4절). 요아스의 성전 보수는 모든 유다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참여한 일이었다(5, 10절). 그 재원을 마련하는 것마저도 "하늘과 땅이 만나는" 또다른 현장인 율법을 따라서 행했다(6, 9절). 여기서 스룹바벨 성전의 잔영이 비친다. 역대기 기자는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했고, 과거 요아스의 성전 보수를 기록함으로써 그 롤 모델을 하나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던 요아스(2절)는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에 의해 훼손된 성전(7절)을 "보수할 뜻"을 두었다(4절). 그리고 장인(3절)인 여호야다를 불러 질책할 정도로 열심을 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을 지켜 성전세를 거두고자 했다(6, 9절). 역대기의 관점에서, 이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었다. 요아스의 열심을 보면서 나는 그러한 열심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현장들(e.g. 성례)이 하찮게 여겨지는 이 악한 때를, 나는 과연 얼마나 안타까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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