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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1:1-9 본문
사울이 죽고 난 뒤, 이스라엘이 모두 모여 다윗을 왕으로 추대한다(1-3절).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던 예루살렘에 나가서(4절) 그곳을 점거한 후(5절) 수도로 삼았다(7절). 요압은 예루살렘 공성전에서도 큰 공을 세웠고(6절) 그 이후 성을 중수하는 데에도 기여했다(8절). 하나님이 함께 하신 덕분에 다윗은 더욱 강해져갔다(9절).
오늘 본문 역시 사무엘하 5:1-10의 본문을 참조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사울의 죽음 직후를 다루고 있는 삼하 1-4장의 내용이 역대기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모시는 자들과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내란을 벌인 내용인데, 이 내용을 삭제했다는 것으로부터 역대기 기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역대기 기자는 대상 10:14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윗이 사울을 (아무 갈등 없이) 계승하였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첫 부분, 즉 역대기에서 사울의 죽음 기사 직후에 나오는 기사는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3절)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데 동의하였다는 기사다. 그리고 역대기에서는 사무엘하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한 가지 덧붙이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3절)라는 표현이다. 즉, 역대기 기자는 다윗의 즉위가 온 이스라엘의 동의와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무엘하의 기사와 묘사가 조금 다르다. 사무엘하에서는 여부스 주민의 조롱에서 기인한 속담으로 "맹인과 다리 저는 자"(삼하 5:6, 8)라는 표현이 중요하게 나오는 반면, 역대기는 요압이 전공을 세운 것을 언급한다(6절). 또한 예루살렘을 쌓은 사람으로 다윗만 언급하는 사무엘하와는 달리, 역대기에서는 다윗과 요압에게 모두 그 공을 돌린다(8절). 이 두 가지 공적은 성경의 다른 곳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 역대기 기자가 요압의 공로를 강조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역대기의 나머지 부분을 훑어 본 결과, 요압에 대해 복합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무엘하와는 달리 역대기는 요압에 대해 일관되게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로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역대기가 기록되던 당대에 요압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 조상을 선인으로 포장했을 가능성이다. 역대기 기자에게 있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는 이 요압의 자손인지 알 수는 없으나 "요압 자손"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스 2:6; 8:9, 느 7:11).
다윗의 즉위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동의함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즉위 기사와 그 이후의 기사를 기록하는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록 속에 일부 집단을 배격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했다. 우리의 공동체 생활 역시 그래야 한다. 다른 지체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이라면, 아무리 '진리'라 해도 조심스럽게 전달해야 하고, 심지어 전달을 삼가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쉽게 '진리'에 치우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되새겨서 공동체를 지켜나갈 수 있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