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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1-13 본문
오늘 본문은 또 다른 천국 비유인 열 처녀 비유(1절)로, 그 맥락이 마지막 때에 관한 강론 중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살펴보자면, 예수께서 오실 날을 성도들이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이 이 비유를 통한 메시지이다(13절). 이는 지난 본문인 마 24:36-51의 중심 메시지와 일치한다.
비유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비유에서는 결혼식 들러리로 서는 열 명의 처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1절), 미련한 자 다섯은 기름 없이 등만 준비했고(3절), 슬기 있는 자 다섯은 기름과 등을 모두 준비해 왔다(4절). 그런데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던 시기에 신랑이 나타났고(5-6절), 부랴부랴 등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자들의 등은 다 꺼져갔다(7-8절). 이들은 그제서야 뛰어가 기름을 구해왔지만(9절) 그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문이 닫혔고(10절) 이들은 문 앞에서 거절 당한다(11-12절).
이 비유의 구체적인 내용에 집착하면 슬기 있는 자들이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로 비칠 수도 있고(9절), 기름 좀 없다고 그들을 모른다고 한 주인이 야속할 수도 있다(12절). 하지만 이 비유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비유 자체에서 슬기로운 처녀들도 신랑이 오기 전까지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3절).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신 말씀이 그저 문자적으로 깨어 있는 것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것 아닐까?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등을 켜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미련한 자들"은 신랑이 금방 올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별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3절). 하지만 "슬기 있는 자들"은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을 미리 생각했고,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했다(4절). 이들의 기름은 나눠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9절). 따라서 때가 이르러 급박하게 기름을 구한다 해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9-10절).
이 비유를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현 시대에 "미련한 자들"과 "슬기 있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미련한 자들은 예수께서 금방 오실 것이라 믿는 자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그 때와 시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광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불태우지만, 원하던 때에 재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기름"을 다 소진해버리고 실망하여 떠날 것이다. 반면 슬기 있는 자들은 오랫동안 신앙을 지킬 자세로, 아무리 늦게 주님이 오시더라도 맞이할 준비가 된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전자와 같은 자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라 경고하셨다(12절).
잘못된 종말론의 위험이 여기 있다. 우리는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하지만 종말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일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천 년 후에 주님이 오셔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믿음은 잠깐 타오르고 사그라질 불꽃인가? 아니면 연료의 공급을 받아 오래 탈 불꽃인가? 슬기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