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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1-13

로보스 2015. 11. 20. 00:28

야고보는 이제 차별과 사랑에 대해 가르친다(1절). 어떤 이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나(2-3절) 이는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4절). 흥미롭게도 야고보는 가난한 자를 선으로, 부자를 악으로 놓고 설명한다. 가난한 자는 "믿음에 부요"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5절)인 반면, 부자는 그리스도인들을 억압하고(6절) 예수의 이름을 비방하는 자들(7절)이다.


야고보는 이어 율법을 근거로 차별을 반대한다. 율법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다(8절). 따라서 차별하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이고(9절), 그 외의 모든 율법을 지킨다 해도 이것 하나만으로 범법자가 된다(10-11절). 하지만 야고보가 단순한 율법주의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유의 율법"을 언급하는데(12절), 맥락상 유대교의 문자적인 율법이 아닌 기독교에서 재해석한 율법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부자를 악인으로 보고 있는가? 1장에서 야고보가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권면한 것(약 1:10)을 볼 때 교회 내에도 부한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들을 무조건 악으로 몬다는 것은 모순이므로,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을 단순히 가리킨다기보다 세상에서 세도를 부리는(6절) 비신자 부자들(2절)을 제한적으로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이 본문을 적용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원리를 끌어내본다. "금가락지"와 "아름다운 옷"(2절)은 누가 봐도 그의 높은 신분을 상징해 주는 것들이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이 화려한 사람을 대접해준다. 야고보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라면(1절) 그 원리를 따르지 말고 대신 누구나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갑자기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당시 정부의 꽤 높은 선출직에 있었던 사람을 예배 중에 일으켜 세워 인사시켰던 사건이 기억난다. 그는 기독교인도 아니었지만, 당시 담임목사는 그 사람 덕분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며 아첨을 했다. 난 그 목사가 새로 나온 다른 분들을 그렇게 소개해주는 건 본 적이 없다. 이런 게 한 가지 차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본다. 나는 가난한 자들, 집이 없는 자들, 배우지 못한 자들,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교회에 새로 오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직업과 전공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세상은 그게 옳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 단호하게 그런 자들은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 말한다(13절). 주여, 내가 차별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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