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출 1:15-22 본문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두려워 한 애굽 왕은 그들에게 엄한 일을 시키는 한편(출 1:12-14) 직접적으로 그 후손의 수를 줄일 계략을 꾸민다. 이는 히브리인의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리는 것으로, 이로써 이스라엘의 병력 가용 인구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동시에 점차 히브리인의 수가 감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굽 왕은 우선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리라는 명령을 내리는데(15-16절), 이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17절). 여기서 이들이 누구를 참된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지상의 통치자는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20a절). 하나님을 경외한 그들의 집안이 흥왕하게 된 것이다(21절). 구약성경에서 자손의 번성은 신적인 복으로 간주되었음을 볼 때, 본문이 이야기하는 바는 명확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시며, 그에게 (하나님만 베푸실 수 있는) 복을 내리신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한편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다(20b절). 이를 두려워한 바로는 두 번째 명령을 내린다. 이제는 부모가 직접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는 것이다(22절). 이 얼마나 끔찍한 명령인가? 바로는 이제 이성을 잃고 비윤리적인 명령까지 서슴지 않고 내리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왕의 명령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산파들의 모습과 근거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의 멸족을 기도하는 바로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산파들에게는 복이 임했고, 바로의 뜻은 신적인 섭리에 의해 좌절되었다.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세상의 협박인가? 오늘 하루 살아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