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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1-9 본문

큐티

단 2:1-9

로보스 2014. 2. 5. 23:45

본문은 배경 설명(1-2절)에 이은 왕과 술사 간의 대화(3-9절)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은 먼저 느부갓네살 2년(1절)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하면서 본문의 역사성을 증언한다. 왕은 꿈을 꾸었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였다(1절). 이는 그냥 꿈의 내용이 싱숭생숭했기 때문에 번민하였다고 생각하고 넘기기 쉽지만, 실상 왕 자신의 말에 따르면 마음이 번민한 이유는 "꿈을 알고자" 함 때문이었다(3절). 따라서 왕은 처음부터 술사들에게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2절).


이어 나오는 왕과 술사 간의 대화는 답답할 정도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왕은 꿈을 알려달라고 명하고(3절), 술사들은 꿈을 일러주면 자신들이 해석해 주겠다고 답한다(4절). 왕은 다시 한 번 꿈의 내용과 그 해석을 알려달라고 말하나(5-6절) 술사들은 동일하게 답한다(7절). 왕은 또다시 "꿈을 내게 알게 하라"는 명령을 반복한다(8-9절).


이어지는 10-11절까지 술사의 대답으로 본다면, 왕과 술사들은 본문에서 정확하게 세 번씩 말을 주고 받았다. 이 셋이라는 숫자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러한 반복을 통해 본문이 가르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문학적 장치를 통하여 술사들의 무능력과 왕의 진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술사들은 마지막 대답에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실토한다(단 2:10-11). 왕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한 자신의 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크게 분노한다(단 2:12).


우리는 이 본문에서 무엇을 묵상해야 할까? 나는 권력자의 횡포를 생각해 본다. 느부갓네살은 당시 최강대국이던 바벨론의 통치자였고,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술사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의 원리인지도 모른다. 권력을 쥔 자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불합리한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사람들을 멋대로 처단한다.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의 통치가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함이다.


무엇을 바라겠는가. 온전한 공의로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 주 예수의 나라를 바랄 뿐이다. 이 소망 없는 세상,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하시고 오직 인자와 공의로 통치를 이루시길 바랄 뿐이다. 주 예수여 속히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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