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9-16

오늘 본문에서는 노사도의 인간적인 외로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며 겉옷과 책을 가져올 것을 부탁한다(13절). 옥중에서 떨며 고독해 하는 바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바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누가를 제외하고 전부 바울을 떠났다(11절). 그 중에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었고(10절), 바울이 선교를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파송한 사람들도 있었다(10, 12절). 바울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16절에서 그는 첫 변론 때 함께 했던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고 말한다. 아예 바울을 적대한 사람도 있었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입혔"다고 한다(14절).

자신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놀랄만큼 침착하다. 그는 자신을 버린 자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고 말했고(16절), 자신을 괴롭힌 자에게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며 복수를 하나님께 맡긴다(14절). 로마서의 구절과 놀랄만큼 일치하지 않는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하지만 바울은 그렇다 하여 그를 무조건 용서하고 바보처럼 퍼주기만 하라고 명하지 않았다. 바울은 도리어 디모데에게 "너도 그를 주의하라"라고 경고한다(15절). 내가 보기에 이는 예수께서 주신 명령,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다. 바울의 태도는,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적대함으로써 순결함을 잃는 것도 아니요, 그가 공격할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지혜를 잃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안팎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모르고 그랬다면 그들을 용서해야 할 것이고, 알고 그랬다면 그들을 지혜롭게 피해야 할 것이다. 그들로 인해 괴롭고 힘들 때는 하나님께 나아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하나님께서 공정히 판결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거꾸로 행동하고 있다. 미련하게 그들과 부딪치고 상처를 받는다. 또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에게 가서 호소하고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 이제 바울의 지혜를 배우길 원한다.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