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딤전 1:8-11 본문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율법의 가치에 관하여 가르침을 베푼다. 이는 이전 본문에서 율법을 부정적으로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딤전 1:6-7) 과연 율법의 선생이 되는 것은 나쁜 일인가? 바울은 8절에서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붙는다.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8절) 즉 이 문장 안에는 앞서 언급한 헛된 말에 빠진 사람들이 율법을 적법하게 쓰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율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9절). 율법은 악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악한 사람의 목록을 쭉 열거하고 맨 끝에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언급하는데(10절), 이는 다시 한 번 지난 본문에서 언급된 "이 교훈"과 연결되는 표현이다. 이 교훈은 어디에서 오는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으로부터 온다(11절). 결국 9절의 "옳은 사람"은 자기 의로 옳은 사람이 아니라 바른 교훈을 따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율법은 옳은 사람, 즉 복음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지만, 복음을 거스르는 자에게는 그 죄를 밝히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로마서 7장이 떠올랐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도 율법의 가치를 언급한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그리고 율법의 용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율법은 거룩한 것이다. 율법은 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죄를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오늘 본문과 일치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율법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옳은 사람"에게는 율법이 의미가 없다. 이에 관하여 갈라디아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갈 3:24-25) 믿음을 가진 사람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다!
바울의 표현대로, 나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안 사람이다. 무시무시한 율법 규정을 지키지 않더라도 "옳은 사람"으로 선포되었다(cf. 롬 8:30). 그 영광의 복음을 과연 나는 감격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는가?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은혜를 값싼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두렵다. 다시 복음 앞에 선다.
다시 복음 앞에 내 영혼 서네
주님 만난 그 때
나 다시 돌아가 주님께 예배 드리며
다시 십자가의 길 걸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