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막 4:1-9 본문
오늘 본문에서 예수는 바닷가에서 큰 무리를 가르치신다(1절). "가르친다"(διδάσκω)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등장하는 걸 볼 때(1-2절), 본문은 예수의 가르침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다(2절).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외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다(막 4:11-12).
본문에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소개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내일 큐티에서 해석될 예정이니 내용보다는 그 형식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본문은 "들으라"(3절)라는 단어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9절)라는 문장이 수미상관을 이루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막 4:12을 참조하자면 여기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서 깨닫는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상상은 여기의 "들으라"라는 표현이 신 6:4 등에 나오는 "들으라"(שָׁמַע)와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즉, 만약 이 추측이 옳다면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말은 율법의 권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암시가 주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헬라어 사전과 70인역을 뒤져보니 이 생각을 정당화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본문에서 강조되는 두 단어는 '가르치다'와 '듣다'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신다. 그 때 우리는 그것을 '들어야' 한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그저 물리적으로 음성을 듣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음을 얻어 돌이키는 것을 가리킨다(cf. 막 4:12).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는 그것을 예민하게 듣고 행해야 한다(약 1:23). 나는 말씀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