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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6:1-11 본문
오늘 본문은 안식일에 관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수록하고 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 일행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 밭의 이삭을 떼어 먹었고(1절), 그것을 본 어느 바리새인들이 규정을 어기는 것이라며 비난했다(2절). 예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들어 반박하시면서(3-4절)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천명하셨다(5절).
다음으로,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가르치러 들어가셨다가 손 마른 사람을 만나셨다(6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고발거리를 찾기 위해 예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7절). 예수께서는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신 후(8절)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물으시고는(9절) 그 사람의 손을 회복시키셨다(10절). 그들은 분노하여 예수를 처치할 논의를 시작했다(11절).
안식일 규정은 율법에 수록된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따라 6일 노동 후 하루를 쉬는 것이 그 근거로 주어졌다(출 20:8-11). 그리고 구약 전체에 걸쳐 안식일에 어떤 형태로도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에 따라 당시 바리새인들은 아주 기초적인 활동을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발전시켰다. 즉 이는 율법을 정확하게 지키려는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안식일 규정들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많은 폐단을 낳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계신다. 이들은 규정을 지키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 대신 "악을 행하는 것"을 취했고, "생명을 구하는 것" 대신 "죽이는 것"을 택했다(9절). 사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은 기계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다윗의 이야기(3-4절)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5절), 다소 맥락 없이 주어진 말이라 해석이 쉽지 않다. 병행 본문인 마 12:1-8에서는 5-7절을 첨가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마태의 해석에 따르면 이 말씀은 율법과 성전보다 더 '큰 이'이신 예수께는 율법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석하자면 예수께서는 율법의 의미를 온전히 알고 행하실 수 있는 분("주인")이시기에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다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계명들이 있고, 또한 2천 년 교회 역사에서 만들어진 많은 전통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 선한 것이요 우리의 신앙 생활을 돕는 것들이지만, 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이 보여주듯 기계적인 잣대로 정죄와 비판에 사용된다면 도리어 악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규정에 얽매여 영혼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