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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7 본문
로마 제국의 황제인 아구스도, 즉 아우구스투스가 호적령을 내린다(1절). 누가는 구체적인 시기를 적시한다. 바로 구레뇨, 즉 퀴리니우스(Quirinius)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후 처음 이루어진 호적령이었다(2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역사성을 더한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옛날 옛날 한옛날에' 전설적인 존재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시대에 그 장소에서 태어나셨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호적령에 따라 사람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고(3절),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자신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4-5절).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다윗의 집", "다윗의 동네"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여기서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을 성취하실 다윗의 자손임을 암시하고 있다.
당시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상태였고(5절),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이미 예수를 배고 있었다(5절). 그리고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출산의 순간이 닥쳐왔다(6절).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에 이들은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7절). 흔히 크리스마스 성극에 등장하는, 추운 겨울밤 여관 방을 찾아 헤매는 요셉의 이야기나, 인정 많은 여관 주인이 여기라도 쓰라며 마굿간을 내주는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다윗의 자손'인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셨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비단천을 두르시고 호화로운 요람에 누워 계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언대로 이 땅에 왕으로 오셨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왕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의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런 찬가를 남겼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다(빌 2:5). 세상의 어떤 영광으로도 모실 수 없는 그 주님께서 강보를 덮고 구유에 누우셨다. 그 앞에서 감히 내가 받는 대접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하늘 영광 버리고
낮고 낮은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하나님
절망 속에 헤매는 인간 한 사람 또 한 사람
만나주시기 위해 내려오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