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요일 2:24-29 본문
지난 본문에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한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붙들라고 권면한다(24절). 즉,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로부터 전해 받은 가르침을 견지하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처음부터 들은 것이 사람 안에 거하면 그는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4절). 그리고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이다(25절). 이 언어는 다소 요한복음의 언어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예수의 고별 설교(14-16장)가 떠오른다. 거기서도 예수의 "말"이 제자들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구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요 15:7)이 나온다.
요한이 이것을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쓰는 이유는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26절). 지난 본문의 "적그리스도"들을 가리킨다. 요한은 "기름 부음", 즉 성령이 독자들 안에 있기에 별도의 가르침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27절). 아마 당시 이단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들고 와서 성도들을 미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요한은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신앙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한다(27절).
다시 한 번 28절에서 요한은 "거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제 주 안에 거하자. 이는 주께서 재림하실 때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주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안에 거하지 않았던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막 8:38, 눅 9:26에서 예수를 부끄러워 하는 자는 재림 때에 예수께서 그를 부끄러워 하실 것이라는 말씀과 의미가 통한다. 그리고 다시 요한은 행함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권면을 한다(29절).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에 이어 이단의 가르침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친다. 이단(26절)은 새로운 가르침을 들고 나타난다. 그럴 때 우리는 "처음부터 들은 것" 안에 거해야 하고(24절), 사람의 말이 아닌 "그의 기름 부음"을 의지하여 주 안에 거해야 한다(27절). 주 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재림의 소망을 누리게 된다(28절). 그리고 주 안에 거하는 자는 그를 따라 의를 행할 것이다(29절). 어쩌면 요한이 염두에 두고 있던 당시 이단들은 행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믿음의 기초가 흔들리지 않고 확고해야 하지만, 교리 논쟁에만 치중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내 신앙은 확고한 가르침에 뿌리를 박되, 그로부터 양분을 빨아올려 행함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신구약 성경이라는 잣대가 주어졌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을 통해 "정통" 교리가 전수되어 왔다. 이제 진리를 잘 소화하여 의로운 행함으로 드러내는 내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