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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5:1-13 본문
백성들은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며(1절) 먹을 것이 없어(2절) 모든 것을 팔아야 할 지경임을 토로했다(3-5절).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분노하여(6절)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다(7-8절). 그리고 모든 이자를 없애자고 제안하였다(9-11절). 그들은 제사장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기로 맹세했다(12-13절).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부딪힌 두 번째 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백성 간의 빈부 격차로,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이다. 본문 1절은 흥미롭게도 "백성들"과 "유다 사람들"을 구분한다. 8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도로 찾"은 대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 하고, "백성들"은 바벨론의 점령 이후 그 땅에 남아 살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즉 1절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원래 그 땅에 살던 사람들 사이의 반목을 암시하고 있다.
그 반목은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서 양식 문제가 대두되었는데(2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년이 들었고(3절) 나라에 내야 하는 세금까지 있었다(4절). 백성들은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는 것으로 모자라(4절)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5절). 이후 본문을 살펴볼 때 이 불만은 귀환한 사람들을 향할 것이 아니라 높은 이자를 받아내는 부유층을 향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엉뚱하게 불똥은 귀환한 사람들에게 튀었다. 이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가 겪고 있는 외국인 공포(xenophobia)와 그 맥이 닿는 사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6절). 하지만 다시 "깊이 생각"했다고 하는데(7절),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 같다. 그는 "귀족들과 민장들"을 치기 위해 "대회를 열"었다(7절). 즉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그는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 종으로 팔리는 사태를 개탄하며 그들을 공격했고 그들은 유구무언이었다(8절). 느헤미야는 이방인의 비방을 두려워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9절).
느헤미야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빚을 주었다면 이자를 받지 말자(10절). 그리고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원금의 1%라도 돌려 보내자(11절). 느헤미야는 자신과 주변인들로부터 모범을 보이겠다고 말하며(10절), 부유층에게 맹세를 받아낸다(11절). 그리고 그는 이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할 저주를 선포하여(12절) 이 일을 못박아 버렸다.
본문에서 살펴볼 거리는 참 많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사회 정의의 상관성에 대해 한 번 묵상해 보고자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한 것(1절)을 듣고, 느헤미야는 그 원인을 찾아 단호하게 대처했다(9-13절). 그런데 그의 공격 대상이 된 부유한 자들은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느헤미야의 행동은 아마 더 많은 대적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는 총독으로서 소요를 막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므로, 분리 정책 등 자신에게 해가 안 되는 방법으로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올바른 방법을 찾았고, 그대로 수행했다. 그가 이렇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행"했기 때문일 것이다(9절). 그는 일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사회의 불의 앞에서 분노했고, 깊이 생각하여 대책을 마련했다. 물론 그는 총독이라는 통치자의 자리에서 일을 한 것이기에 나의 상황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나 역시 "분노"하고 "깊이 생각"할 수는 있지 않을까? 내 안에는 공의에 대한 목마름이 존재하고 있는가?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최근 뉴스를 뜨겁게 달군 소식들 앞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