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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34:8-13

로보스 2017. 10. 31. 13:17

즉위 18년에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고자 했다(8절). 성전에 오는 사람들이 낸 헌금을 대제사장이 모아(9절) 공사 감독에게 넘겼고, 이 돈으로 일꾼들이 수리에 사용하였다(10-13절).


이 부분은 열왕기하 22:3-7에 대응하나, 내용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먼저 열왕기에서는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할 마음으로 사반을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파송한 것으로 나오나, 역대기는 요시야가 성전 수리를 시작한 것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열왕기는 힐기야가 돈궤를 맡은 것으로 묘사하지만(왕하 22:4), 역대기는 사반을 비롯한 세 명의 사람이 돈궤를 정리해서 힐기야에게 넘긴 것으로 묘사한다(9절). 무엇보다 역대기에서는 성전 수리의 구체적인 내용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11-13절).


내용의 일관성으로 볼 때, 열왕기가 먼저 기록되었고 역대기가 그것을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역대기 기자의 의도는 성전 수리를 요시야 당시에 '실제 일어난 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열왕기에서는 결국 요시야 치세가 끝날 때까지 성전 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에게 '성전'을 중심으로 개혁 운동이 일어났던 것을 생각해 보면, 선한 왕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했다는 기사는 큰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본문에는 편집에 따른 흥미로운 장치들이 들어있다. 먼저 기자는 요시야가 18년 동안 행한 일을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일로 정리한다(8절). 이는 그가 20세 되던 해에 행한 우상 제거 사업을 가리킨다(대하 34:3-7). 그렇게 나라가 정결해진 후, 요시야는 성전을 수리하고자 했다(8절). 성전 수리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성전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11절). 이 내러티브는 히스기야의 내러티브에서 성전 정화를 행한 후 제사를 회복했던 것(대하 29장)과 비교할 만 하다.


성전 수리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 마음이 되어 진행한 것이었다. 본문은 이를 헌금의 주체를 묘사하는 데에서 강조하고 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헌금을 냈다(9절). 그리고 수리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은 "성실하게 그 일을" 감당했다(12절). 이 표현은 사실 열왕기에서 헌금을 횡령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쓰인 것(왕하 22:7)인데, 본문에서는 직무 자체에 충실했다는 의미로 변형되었다.


이 모든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은 누구였는가? 본문은 그 감독들이 "레위 사람들"이었다고 증언한다(12절). 레위 사람들은 "목도꾼을 감독하며 모든 공사 담당자를 감독"했고,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로 헌신했다(13절). 심지어 본문은 일부 레위 사람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것 역시 열왕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레위인의 위치를 회복시키려 했던 포로기 이후 종교 개혁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 본문은 열왕기와 비교하여 보면서 역대기에 투영된 포로기 이후 유다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읽어 보았다. 그들은 훼손된 성전을 복구하려 했고, 땅에 떨어진 레위인의 위신을 회복하려 했다. 그리고 이는 몇 명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행해야 했다.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성전과 레위인은 이 땅의 인간이 하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즉 다시 톰 라이트의 표현을 빌자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다. 교회 시대에는 성도 개인이 그 역할을 감당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전으로 거룩하게 여기고 있는가?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근심하시지 않게 하고 있는가? 교회 된 우리가 한 마음으로 고민하고 노력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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