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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2: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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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2:1-9

로보스 2017. 9. 6. 11:29

여호람의 뒤를 이어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1-2절). 그는 아합의 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아합의 집을 따라 행하였고(3-4절), 이스라엘 왕 요람과 연합하여 아람을 쳤다(5절). 이 전투에서 요람이 부상을 입자 아하시야가 이스르엘까지 가서 문병하는데(6절), 그 때 예후의 반란이 일어나(7절) 아하시야의 측근들이 몽땅 죽임을 당하고(8절) 아하시야 역시 목숨을 잃는다(9절).


오늘 본문은 왕하 8-10장에 걸친 이야기를 군데군데 발췌하여 엮은 듯 하다. 아하시야의 즉위(1-6절)에 대해서는 왕하 8:25-29 및 9:29에 기록되어 있고, 예후가 기름부음을 받고 아합 왕조를 멸망시키는 사명을 받은 이야기(7절)는 왕하 9:1-10에, 아하시야의 형제들이 예후의 손에 죽은 이야기(8절)는 왕하 10:12-14에, 그리고 아하시야의 죽음(9절)은 왕하 9:27-28에 기록되어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열왕기는 아하시야가 요람과 같은 시간대에 죽은 것으로 묘사하는 반면(왕하 9:14-27), 역대기는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숨었다가 발각된 것으로 묘사한다(9절)는 것이다.


본문은 아하시야가 "막내 아들"임에도 왕위를 이어받은 것을 강조한다(1절). 물론 그 이유를 그의 형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라고 밝히지만(1절; cf. 대하 21:16-17), 어쩌면 열왕기의 평행 본문(왕하 8:25)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역대기 기자가 장자가 아니라 막내가 왕위에 오른 것을 일종의 복선으로 사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아하시야의 이름이 여호아하스(대하 21:17), 아사랴(6절)로도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여럿이었을 수도 있고, 기자 및 편집자의 착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은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했다고 기록한다(4절). 그리고 그 이유로 그 어머니가 아합 집안의 피를 이어받았음을 지목한다(3절). 구체적인 죄악은 열거되지 않지만, 맥락상 우상숭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여호사밧과 마찬가지로, 아합 왕조와 가까이 지내 연합군을 형성하고(5절) 문병도 다니는 사이였다(6절). 여호사밧도 악한 이스라엘 왕조와 교류했다가 징계를 받았던 것(대하 19:2)을 고려하면, 아합 왕조와 연합한 것 자체도 하나의 죄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해를 입"힐 계획을 갖고 계셨다(7절). 아하시야는 예후의 반란 당시 때마침 사마리아에 있었고(7절), 그 덕분에 자신의 형제들과 자신까지 예후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8-9절). 흥미롭게도 역대기는 예후가 아하시야를 정중히 장사했다는 기사를 전하는데, 그 이유로 아하시야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자손]"이었음이 제시된다(9절). 열왕기의 평가(왕하 10:31)와는 달리 역대기는 예후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하시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손자(9절)이었지만, 동시에 "오므리의 손녀" 아달랴(2절)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편을 들어(3절)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교류하였고(5-7절), 결국 그는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다(7절). 여기서 우리는 누구와 교류하는가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만약 그가 할아버지(여호사밧)의 길을 따랐다면 복을 받았을 것이지만, 어머니(아달랴)와 외할아버지(아합), 그리고 외삼촌(요람)의 길을 따르는 바람에 망해 버렸다.


거칠게 말해, 나 역시 삶 속에서 끊임없이 이 두 가지 길 앞에서 고민한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길과 우상(돈, 명예, 권세, ...)에게 마음이 나뉘는 길이다. 아달랴가 아하시야에게 속삭였던 것처럼, 세상은 끊임 없이 후자가 더 좋다고 말한다. 실로 그렇다. 바로 돈을 쫓고 명예를 쫓고 권세를 쫓는다면 더 성공적인 삶이 될 것만 같다(여호사밧조차 온전하지 못했음을 기억하자!). 하지만, 그 유혹을 단호히 끊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 옳다. 주위에 성공을 말하는 자보다 경건을 말하는 자를 두자. 아내와, 부모님과, 가족과,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과 경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하여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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