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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이었고(7절), 그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예수께서 하신 사역을 그대로 수행하였다(12-13절).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들을 파송하실 때 내리신 명령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명령들이 많다. 이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찾아내길 원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다(7절). 이는 눅 10:1에서 70인을 파송하실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 원칙이었다. 단순히 생각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씩 보내는 것이었을 텐데, 굳이 둘씩 보내신 이유가 있을..
본문은 예수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셔서(1절) 가르치실 때(2절)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자들은 분명 예수께서 베푸시는 "지혜"와 "권능"을 보았다(2절). 하지만 그들은 예수에 대해 너무 익숙했고, 결국 그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배척하게 되었다(3절). 예수께서는 이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었고(5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시며 그들을 떠나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6절).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예수가 익숙했던 자들은 자신의 틀에 갇혀 예수를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도 바로 이 '익숙함'이다.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 내가 알고 있던 예수님, 내가 알고 있던 성령님의 모습에 빠져..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키워드도 "믿음"이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6절)라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음을 믿으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다(롬 4:17). 이를 정말로 믿는가? 죽은 자 같은 내 삶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가?
본문은 예수의 치유 사역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제 배경은 호수의 "맞은편", 즉 갈릴리 지방이다(21절). 본문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회당장 야이로의 딸 이야기(막 5:21-24; 5:35-43)가 바깥쪽 내용이고, 혈루증 여인 이야기(막 5:25-34)가 안쪽 내용이다. 본문은 핵심 단어는 "구원"이다. 이 단어는 23절, 28절, 34절의 세 군데에서 사용되었는데, 헬라어 원 단어(σῴζω)는 "구원"과 "치유"의 두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치유의 의미로 번역) 본문에서는 "치유"의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의미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포하셨다(34절). ..
오늘 본문은 흥미롭게도 예수께서 "함께 있기를 간구"한 자(18절)에게 도리어 집으로 돌아가 이 일을 알리는 사명을 주셨다(19-20절)고 이야기한다. 이는 매우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e.g. 막 1:44) 제자들에게는 자신을 따르라고 명하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났을지 고민해 보던 차에, 혹시 지역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 예수의 사역이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에 비해(공관복음의 서술), 이번 사건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막 5:1)에서 벌어졌다. 마가는 확실히 이 지역을 '다른' 지방으로 보고 있다(17절). 이 지역은 어떠한 곳인가?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거라사는 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