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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수의 권능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바다 위를 걸으셨고(47-51절) 병자들을 고치셨다(56절). 이는 물론 그의 하나님 되심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이 권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었는가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것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이를 돕기 위해 가신 것이었다(48절). 마찬가지로 병든 자를 고치신 것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예수의 사역은 '구원'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나는 예수를 보고 소리 지르는 제자들인가, 간구하는 사람들인가? 구원을 위해 오신 그 분께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를 구원하소서, 오 주님.
오늘 본문은 직전 본문에서 다뤄진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 불쌍히 여기사" 가르치셨다는 기사(막 6:34)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그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루고 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또 한 번 맛보여 주신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수께 가르침을 받은 큰 무리를 앞에 두고, 제자들은 이들을 흩어 배를 채우게 하자고 말한다(36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명하신다(37절). 제자들의 첫 제안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제안은 무리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 대답에 담긴 "너희가"라는 단어에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 통치자로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자들은 이미 전..
잠시 세례 요한의 이야기(막 6:17-29)로 샜던 마가는, 다시 예수의 사역으로 돌아온다. 오늘 본문은 막 6:13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예수께로부터 권능을 받은 후 나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쳤다(막 6:12-13). 그리고 예수께로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30절). 이야기를 들은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휴식을 주신다(31절). 이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창 2:2, 출 31:17)과 같은 맥락에 있다. 성실히 일한 일꾼은 그 다음 일을 위해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은 휴식을 취하러 배를 타고 이동한다(32절).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들의 이동을 본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간 것이다(33..
우울한 이야기니까 내용 요약은 생략. 헤로디아는 즐거워하고 요한은 목이 베였다. 악한 자들은 낄낄거리고 선한 자들은 괴로워 한다. 악이 성하고 선이 쇠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본문이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 현실이다. 하지만 문맥을 살펴보자면 이는 '액자식 구성'으로 예수의 사역 사이에 삽입된 이야기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암담한 세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세상이다!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도 모르게 점점 커져서 결국 이 세상을 집어 삼킨다(막 4:26-32).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다. 주여, 보이는 절망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소망을 붙들게 하소서.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고통에 차 있다.하지만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다. - 카를 바르트
본문은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로 시작된다(14절). 이는 앞선 12-13절에서 제자들이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였고 어떤 이는 선지자라고 하였지만(15절; 엘리야에 관해서는 말 4:5 참조), 이야기를 들은 헤롯은 세례 요한이 부활했다고 생각하였다(14, 16절). 이어 본문은 헤롯과 세례 요한의 악연을 소개한다. 헤롯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였는데(17절) 요한은 이것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다고 경고하였다(18절). 여기서 요한은 전통적인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말을 듣고 헤롯은 번민하였지만(20절), 헤로디아는 요한을 미워하였다(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