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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에 등장한, 재물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이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신다. 지난 본문과 이어 보면 영생을 얻는 것(막 10:17), 하늘의 보화(막 10:2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23, 24, 25절), 구원을 얻는 것(26절)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먼저 주목하자. 오늘 본문의 구조는 A-B-A'-B'-C의 구조이다. 먼저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말씀하시자(23절, A) 제자들이 놀라고(24a절, B),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강조해서 말씀하시자(24b-25절, A') 제자들이 다시 한 번 놀란다(26a절, B').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제..
익숙한 본문일수록 이미 나에게 주입된 해석틀로 해석하기 쉽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은 내 선입견을 버리기 정말 힘든 본문이다. 과연 본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꼼꼼하게 본문을 따라가면서 오늘의 말씀을 받기 원한다. 예수께서 가르침을 마치시고 길에 나가셨을 때, 한 사람이 예수께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물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절) 본문은 이 사람의 태도가 매우 급박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선한 선생님"을 만나 질문을 던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 절박한 질문에 의외의 답을 던지신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18절) 이 "선하다"(ἀγαθός)라는 단어는 마가복음에서는 이 본문에서만 사용된다. 그것을 볼 때 마가가 ..
최근 묵상한 여러 본문을 돌이켜 보면,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에 대한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이 질문을 좀 더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다음 본문으로 이어져, 부자 청년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막 10:24)가 드러난다.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언급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포하신다(14절). 이는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15절). 그렇기에 예수께선 제자들이 거부했던(13절)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셨다..
예수께선 갈릴리(막 9:30)를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셨다(1절). 그곳에서도 무리는 모여들었고, 예수께서는 그 무리를 가르치셨다(1절). 이 짤막한 기사 안에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께서는 항상 가르침을 베푸셨다는 내용을 읽어낼 수 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혼에 관하여 질문하였다(2절). "시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이혼을 허용하든 금지하든 트집 잡을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혼이 허용된다고 하면 극단적인 예를 취하여 문란한 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금지된다고 하면 모세의 율법에 어긋난 가르침을 베푼다고 고소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를 아시고 먼저 율법을 물으신다(3절). 이에 대해 그들은 율법이 이혼을 허용하고 있다고 ..
어제 본회퍼의 마태복음 5장 강해를 읽었는데 마가복음의 평행 구절을 또 큐티로 만나다니... 아무래도 하나님이 나한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 보다. 본회퍼는 자신의 책 에서 말한다. 예수께서 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손과 발, 눈을 제거해 버리라고 하신 말씀에 담긴 의미는 어떤 것인가?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그 명확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학적"으로 다른 해석을 만들어내고 예수의 말씀을 변형시키는 걸까? 결국 이 합리화는 내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내 죄는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살다보면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죄(와 그 근원)를 단호하게 처리하는 것은 '죄 없으신'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죄와 함께 살겠노라." 과연 이것이 나를 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