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예수께서 성전에 계실 때에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신 후 헌금하는 사람들을 보셨다(41절). 나는 마가가 이 본문을 시작할 때 예수의 행동을 언급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이 '앉는다(καθίζω)'는 단어가 마가가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할 때도 사용한 단어이기 때문이다(막 16:19). 즉, 어쩌면 마가는 예수께서 헌금함 앞에 앉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헌금함 앞에 통치자/심판주로서 심판을 내리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심판주는 여러 부자(41절)와 한 가난한 과부(42절)를 보시고 판결을 내리신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절) 어째서 그런가?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서 일부를 떼어 넣었지만 과부는..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서기관들에 대한 적개심을 유감 없이 드러내신다. 서기관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문안 받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한다(38-39절). 이는 모두 자신이 드러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교만한 행동들이다. 서기관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다(40절). 자기애에서 비롯된 교만은 필연적으로 이웃에 대한 수탈을 수반한다. 하나님은 교만도 이웃에 대한 수탈도 용납하지 않으시기에,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할 것이다(40절). 어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 나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사람이 인정해주고, 사람이 ..
예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었지만(계 22:16) 동시에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께서 스스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실 때와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할 때(35절)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서기관들은 아마 다윗을 그리스도보다 높은 위치에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다윗의 통치를 온전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저 그 통치를 "회복"하는 존재였다. 즉, 다윗이 완전한 형태의 통치를 펼쳤고, 그리스도는 그것을 그대로 모방할 것이라는 이해가 그들 사이에 편만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통치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좀 더 완전한 통치의 모형에 불과했다. 완전한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다. 다윗이나 아브라..
본문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대화를 전한다. 이번에는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묻는 장면이다(28절). 그의 질문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였다. 하지만 그는 앞선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를 시험하려는 의도에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았기에 좋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대계명으로 답하시고(29-31절), 서기관 역시 이에 대해 맞장구를 친다(32-33절). 여기서는 이 두 대답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 각 대답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전제와, 그에 딸린 하나님 사랑의 계명, 그리고 이웃 사랑의 계명이 그것이다. 예수께서는 앞의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