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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막 10:13-16

로보스 2013. 10. 2. 22:44

최근 묵상한 여러 본문을 돌이켜 보면,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에 대한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이 질문을 좀 더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다음 본문으로 이어져, 부자 청년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막 10:24)가 드러난다.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언급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포하신다(14절). 이는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고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이다(15절). 그렇기에 예수께선 제자들이 거부했던(13절)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셨다(16절).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마태는 이를 가리켜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 설명한다(마 18:4). 하지만 나는 마가복음에서의 맥락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근처 본문에서 마가는 순종의 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의 순종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어린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순종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순종하는 자들의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서 자라!"고 말한다면,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안다. 그러나 신학적 훈련이 잘못된 어린아이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아버지가 "가서 자라!"고 말한 것은 내가 피곤하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내가 피곤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록 나가서 놀아도, 나는 피곤을 이길 수 있다. 그렇다. 아버지가 "가서 자라!"고 말했지만, 아버지의 진심은 "나가서 놀아라!"인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다 보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시민은 관리로부터 매우 분명한 말을 들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예수의 명령 앞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여기서는 단순한 순종이 왜곡된다. 다시 말하면, 단순한 순종은 불순종으로 왜곡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 본회퍼, <나를 따르라> 중에서


다시금 나의 순종을 돌이켜 본다. 나는 주님의 명령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순종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어린아이 같이, 나도 주님께 전적인 신뢰와 전적인 순종을 보이길 원한다. 주님, 무지하고 미련하오니 주님의 뜻을 알게 하사 순종의 길을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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