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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슬픔에 잠겨 예루살렘을 떠난다(30절). 아히도벨이 역도 중의 하나라는 것을 들은 다윗(31절)은 자신의 친구 후새(37절)를 예루살렘에 남겨두어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력화시키려 한다(32-34절). 또한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통해 압살롬의 동태를 살피고자 한다(35-36절). 한편 압살롬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한다(37절). 본문에서 받은 첫인상은 "슬픔"이었다. 다윗과 백성들은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감람산으로 올라갔다(30절). 후새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에게 나왔다(32절). 왕자가 왕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왕은 하나님의 궤를 버려둔 채 광야로 도망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가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의 고통을 더한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다윗은 과감히 포기한다. 어쩌면 법궤의 존재로 인해 압살롬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25-26절)으로 법궤를 포기한다. 다윗의 말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가 심금을 울린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했던 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와 쌍벽을 이루는 신앙의 언어 아닌가. 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 본다.
다윗과 잇대의 대화는 나오미와 룻의 대화를 연상시킨다. 다윗의 말(20절)처럼 잇대는 "은혜와 진리"가 있는 곳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곳은 호화로운 궁전이 아니라 "광야 길"(23절)이었다. 나는 은혜와 진리를 따라 광야로 향할 결심을 했는가?
압살롬이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하자(7-8절) 다윗은 이를 흔쾌히 허락한다(9절). 하지만 압살롬은 사람들을 이끌고 헤브론으로 가(11절) 왕을 칭하고(10절), 민심이 점차 압살롬에게로 기운다(12절). 압살롬이 왜 반역의 장소로 헤브론을 택했을까? 헤브론은 다윗이 왕이 되어 7년 반을 다스린 곳(삼하 2:11)이었다. 이 때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사울 왕가의 수중에 있었고, 다윗은 유다 지파만 다스리고 있었다. 어쩌면 압살롬은 이를 기억하고 동일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윗과 압살롬에게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다윗이 헤브론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삼하 2:1). 압살롬은 비록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핑계를 대기는..
압살롬은 사병 조직을 꾸린다(1절). 또한 그는 아침마다 예루살렘 성문 곁에 서서 송사하러 온 사람들(2절)에게 다윗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고(3절) 자신이 정의를 베풀겠다고 선언한다(4절). 게다가 따뜻하게 그들에게 입을 맞추어(5절) 마음을 훔치게 된다(6절). 본문은 이제 확연하게 압살롬을 악인으로 보기 시작했다("훔치니라", 6절).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사병 조직을 키우고(1절) 왕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심어준다(6절). 나는 다시 한 번 구원사적 시각으로 본문을 해석해 보려 한다. 다윗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권을 내려주신 이 땅의 통치자인 것이다. 압살롬은 그런 통치자의 정의를 의심하게 한다.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