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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바울의 기도, 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을 알고(9-10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10-11절)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12절). 이어 그는 하나님의 구원사를 정리하는데(12-13절), 그 핵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14절).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다(15-17절). 사도 바울의 글은 분석하기 쉽지 않다. 문장이 길고 의식의 연쇄를 따라 글을 써나가기 때문에 잘 쫓아가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바울의 기도는 올바른 성도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데(9-12절), 하나씩 살펴보는 것도 좋겠지만 너무 복잡한 관계로 후반부와 연결시켜 12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울은 아버지,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 가운..
오늘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히브리 말로(2절) 유대인들에게 베푼 "변명"(1절)을 살펴본다. 그는 우선 자신의 출신을 밝힌다.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 못지 않게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3절).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4절), 다메섹 교회를 멸절시키기 위해 공문까지 받았다(5절). 하지만 그는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났고, 그 결과 눈이 멀었지만(6-11절)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 눈을 다시 뜨게 된다(12-13절). 아나니아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고(14-15절), 그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16절).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17절) 이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의 계시를 받는다(18, 21절). 이는 비록 그가 극적인 회심을 했지만(19-20절..
바울과 그 일행은 바보를 떠나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를 들러(13절)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렀다(14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간 그들에게 회당장들이 말씀을 청하자(15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하였다(16-41절). 오늘은 이 바울의 설교를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우리가 점하는 위치를 되돌아 보고자 한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대상으로 설교를 전한다(16, 26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17절) 광야를 거쳐(18절)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셨다(19절). 사사의 통치 기간이 지나고(20절) 사울(21절)과 다윗(22절)이 왕이 되었다. 특별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고(22절),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후손에서 구세주 예수가 나게..
지난 본문까지 교회 공동체의 성립을 설명한 사도행전은,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1절) 미문에서 구걸하던 못 걷는 사람 하나(2절)가 그들에게 구걸하였다(3절). 베드로와 요한은 그를 바라보고(4, 5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했다(6절). 그의 다리는 그 순간 회복되었고(7, 8절) 이를 본 백성들이 깜짝 놀랐다(9, 10절). 본문은 구원 받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능력이 따르는지 잘 보여준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었던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뿐이었다(6절). 하지만 그 이름 앞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고, 걷지 못했던 그 사람의 삶은 이제 구걸하는 삶에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으로 바..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서서 무리에게 설교를 베푼다(14절). 방언은 취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15절)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는 요엘서를 인용하며 하나님의 영이 부어졌다고 설명한다(16-21절; 욜 2:28-32). 이어 그는 예수에 대해 증언한다. 예수의 능력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보여주었다(22절). 하나님의 뜻대로 그는 죽으셨고(23절) 다시 사셨다(24절).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유대인들을 위해, 그는 시편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다윗은 "주의 거룩한 자"가 죽지 않을 것임을 노래했다(25-28절; 시 16:8-11). 하지만 다윗 그 자신은 이미 죽었다(29절). 그렇다면 다윗이 노래한 그는 누구인가? 다윗은 선지자로서 자신의 자손이 죽지 않을 것임을 본 것이다(30, 31절..
가나안 정탐이 끝나자, 이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끌고 싯딤을 떠나 요단 강가에 이른다(1절). 그곳에서 사흘을 묵은 후(2절), 이제 도강을 시작한다. 행진의 선두에는 "언약궤"가 있었고(6절) 이스라엘은 그 뒤를 따라 나섰다(3-4절).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백성을 성결하게 하였다(5절). 그리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7절) 이어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놀랍게도 물이 넘실대는 요단강에 들어서라는 것이었다(8절).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진로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를 따랐다(3절). 심지어 언..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의 1-2절, 즉 하나님께서 "처음 난 모든 것"을 구별하여 드리라고 하신 말씀에 대한 모세의 설명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면(11절), 인간과 가축의 모든 첫째 자식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12절). 사람이나 나귀는 모두 어린 양으로 대속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려면 그 자체를 죽여야 했다(13절). 그 의미는 애굽에서 빠져나올 때 애굽에 임한 재앙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처음 난 모든 것들 역시 "죽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바치는 대신 대속하는 형태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었다(14-15절). 모세는 앞서(출 13:9)와 동일한 표현으로 이 규정을 마치는데(16절),..
바울은 9장 서두에서 밝힌 "큰 근심"과 "고통"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하게 밝힌다. 바로 "이스라엘의 구원"이다(1절). 바울이 그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있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2절) 자기 의를 세우려고 집착하다가 하나님의 의를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3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4절).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 바울은 여기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구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5-8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행함으로 인해 구원을 받는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8:5) 하지만..
지금까지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되돌아보자.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로 인해 근심이 많다(1-3절).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했지만(4-5절), 혈통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6절). 이는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의 전적인 뜻대로 선택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7-13절). 하나님은 뜻대로 선택하시는 분이며(14-18절), 그 앞에서 우리는 항변할 수 없다(19-23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들의 글 속에서 이방인들이 구원받을 것을 계시해 두셨다(24-29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30절)라는 표현과 함께, 바울은 구원의 핵심 원리로 돌아온다. 이방인들은 율법으로 오는 의를 따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오는 의를 얻었다(30절). 반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오는 의를..
삼위일체 교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 켠에 불편함이 있었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은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성자와 성령의 동일성은 간접적인 형태 이외에 증거하는 구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희원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을 때는 요한복음 14-16장이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답해 주셨는데, 나에게는 그 본문의 증거가 그리 명백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성경을 묵상하던 중에 조금 더 성자와 성령을 일치시킬 수 있는 본문을 찾았다. 24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이 본문은 마치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주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God sent His son, they called Him Jesus He came to love, heal, and forgive. He lived and died to buy my pardon, An empty grave is there to prove my Savior lives.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How sweet to hold a newborn baby, And feel the pride and joy he gives. Bu..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나의 왕 내 노래 내 생명 또 내 기쁨 나의 힘 나의 검 내 평화 나의 주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나의 죽음도 유익함이라 1976년에 발표된 이 곡은 참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배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1) 사실, 어릴 적 이 찬양을 부르면서 가사가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 안에 사는 분이 예수님이신데, 내가 죽는 게 유익하다고? 두 문장의 연관성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령 저 구절을 알았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는 앞뒤 구절을 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
은혜로 충만했던 수련회가 끝나고, 아직도 박희원 목사님의 사자후가 머릿속에 쟁쟁한 상태에서,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을 손에 잡았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해서”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그리운 제자반의 내음을 알씬 느끼며 책을 펼쳤다.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특유의 박식함으로 “소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풀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라는 대명제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소명을 나 자신의 의지, 나 자신의 계획, 나 자신의 꿈과 혼동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명의 주체가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이다. 기니스는 이 당연한,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해지지 않은 진리를 몇 개의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 나도 같이 쓸어주마 나 위해 쓸자는 그 방 내가 쓸어 너를 주고 닦다가 닳아질 네 맘 내 닦아주마 쓸지 닦지 하던 마음 그것조차 맘뿐이고 님이 손수 쓸으시고 나까지도 앉으라시니 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 참 없소이다 함석헌 선생의 시 의 일부. 김기석 목사님의 를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위 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귀하디 귀한 님을 맞이하려고 쓸고 닦고 하지만, 채비를 채 차리기도 전에 님이 오셨다. 준비 안 된 어수선한 광경을 보시며 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친히 비를 드신다. 난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님은 청소를 마치시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시며 내게 앉으라고 권하신다. 부끄럽다. ..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땅의 모든 끝 모든 족속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모든 열방이 주께 돌아와 춤추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길을 만들자 십자가를 들고 땅 끝까지 우린 가리라 우리 주님 하늘 영광 온 땅 덮을 때 우린 땅 끝에서 주를 맞으리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전 뜨거웠던 때에는 주님이 오시는 것이 그렇게 기대되고 들뜰 수 없었다. 내 사모하는 주님을 볼 수 있다니, 그 아름다운 주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뜨거움이 식어가면서 재림에 대한 소망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 곡을 만났다. 실로 오랜만에 외쳐본다. 마라나타,..
14장 전반부에는 예수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공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등장한다. 7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4:7-11) 별로 어려운..
24장 10-23절에는 율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된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그 처분을 묻는다(10-12절). 여호와는 그에 대한 처분을 명령하고(14절),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행하였다(23절). 여기서 내 주목을 끌었던 것은 여호와의 명령과 그 이행 사이에 삽입된 "율법 명령"이다(15-22절). 전문을 살펴보자. 15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담당할 것이요 16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17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짐승을 쳐죽인 자는..
에 보면 다음과 같은 미묘한 표현이 등장한다.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4-36)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 불신자 가정 속의 신자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합리화한다. 예컨대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부인이 무신론자 남편과 맨날 싸운다면, 그것은 예수께서 명하신 것이니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저 구절이 정말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 를 읽던 도중, 다음 구절을 읽고 눈이 번뜩 뜨였다. 4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오늘 대학부 예배 시간에 부른 곡.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라는 가사에서 눈물이 났다. 주께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나 또한 주를 따라 그 "인간"을 위해 십자가를 ..
구약성경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하나 발견했기에 포스팅으로 남긴다. 42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44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왕하 4:42-44) 선지자 엘리사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보리떡 20개와 채소를 가지고 100명이 먹고 남은 사건. 딱 들으니까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 오병이어 사건! 이 사건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복음서의 기자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