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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2:1-21 본문

큐티

행 22:1-21

로보스 2015. 7. 3. 00:16

오늘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히브리 말로(2절) 유대인들에게 베푼 "변명"(1절)을 살펴본다. 그는 우선 자신의 출신을 밝힌다. 그는 그 자리에 모인 유대인들 못지 않게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3절).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고(4절), 다메섹 교회를 멸절시키기 위해 공문까지 받았다(5절). 하지만 그는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났고, 그 결과 눈이 멀었지만(6-11절)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나 눈을 다시 뜨게 된다(12-13절).


아나니아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고(14-15절), 그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16절). 그리스도인이 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17절) 이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의 계시를 받는다(18, 21절). 이는 비록 그가 극적인 회심을 했지만(19-20절)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그의 증거를 받지 않을 것이며(18절)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들어 이방 사역에 사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21절).


바울은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그는 "히브리 말"로 증거하였고(2절), 다소 출신이지만 예루살렘에서 자랐음을 강조한다(3절). 그는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로(3절)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였다(4-5절). 그는 자신을 인도한 아나니아에 대해서도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요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라고 증언한다(12절). 아나니아의 발언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하나님 호칭이 사용된다(14절). 바울은 회심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성전에 와서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17절). 즉, 바울은 이 "변명"을 통해서 자신이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동일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그는 (유대교였다면 허용되지 않았을 행동인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세례를 받았고(16절), 나사렛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8-10절). 또한 유대인들을 뛰어넘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18-21절).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율법과 복음의 연속성과 비연속성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이 유대교의 전통적인 하나님과 같을지라도, 그 핵심적인 가르침은 서로 다르다.


사도 바울은 극적인 체험을 통해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다. 자신이 열심을 가지고 핍박하던 자들과 한 배를 타게 된 것이다. 물론 두 종교의 하나님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신학적) 거부감을 줄여주었을 수는 있겠지만, 핍박과 고난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리 향한 것이다. 나는 내가 체험한 하나님에 대해 그만한 확신이 있는가? 복음의 진리 됨을 믿고 그 안에 영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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