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오스 기니스, <소명>, IVP 본문

서적

오스 기니스, <소명>, IVP

로보스 2011. 2. 5. 00:04

은혜로 충만했던 수련회가 끝나고, 아직도 박희원 목사님의 사자후가 머릿속에 쟁쟁한 상태에서, 졸업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책, <소명>을 손에 잡았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해서” 읽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그리운 제자반의 내음을 알씬 느끼며 책을 펼쳤다.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특유의 박식함으로 “소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풀어놓는다. 그 중심에는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라는 대명제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이들이 소명을 나 자신의 의지, 나 자신의 계획, 나 자신의 꿈과 혼동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명의 주체가 하나님 그 분이라는 것이다. 기니스는 이 당연한, 그러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해지지 않은 진리를 몇 개의 장을 할애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명을 어떻게 이 땅에서 실현할 수 있는가? 기니스는 여기서 ‘가톨릭적 왜곡’과 ‘개신교적 왜곡’이라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여 소명에 대한 오해를 설명한다. 가톨릭적 왜곡은 하나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분시켜 하나님의 일은 거룩한 것이고 인간의 일은 하찮은 것으로 보는 이원론이다. 한편, 개신교적 왜곡이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뜻을 좇으면서 이를 소명으로 포장하는 입장을 말한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지적한 바로 그 입장이다. 기니스는 이 두 가지 중 어느 입장도 성경적이지 않으며,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삶의 각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입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분석이 박희원 목사님의 설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박희원 목사님은 세상과 타협해버리는 ‘혼합주의 기독교’와 세상과 교회를 분리시켜 버리는 ‘이원론’을 경계하시는데, 이는, 이 책의 용어를 따른다면, 각각 개신교적 왜곡과 가톨릭적 왜곡에 대응한다. 많은 한국 교회 성도들이 자신이 유명해지고 부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믿으며 세상의 가치와 세상의 방법론을 좇는다. 이것이 소명에 대한 개신교적 왜곡 아니겠는가? 한편, 역시 많은 성도들이 ‘영의 일’과 ‘육의 일’을 분리하여 전자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이들에게 목사는 거룩한 사람이고 평신도는 하찮은 사람이며, 목사의 사역은 거룩한 일이고 평신도의 직업은 하찮은 일이다. 이것이 소명에 대한 가톨릭적 왜곡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 두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소명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소명의 역할 모델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우리의 주요 구원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아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인간도 하지 못한 ‘전적 순종’을 실현한 분이다. 겟세마네의 고뇌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저항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는 처절한 절망 속에서, 그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냐고 반문하면서도 끝까지 순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을 던지신다. “나를 따르라.”

여기서 수련회 셋째 날 우리의 가슴을 울린 박희원 목사님의 설교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예수처럼 사는 것이다. 예수를 본받은 바울처럼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신 인간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내주고, 그로 인해 내가 곤고해지고 비참해질지라도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가? 내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온다. “우리 가진 이 모든 것들을 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었네.” 그 긍휼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항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신다. “얘야, 나를 사랑하니?”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대답할 기력도 없어 그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방긋 웃으신다. “그럼 나를 따르라.” 그대로 몸을 홱 돌려 휘적휘적 걸어가신다. 이 어둠과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을 선포하기 위해 그렇게 걸어가신다. 내 소명은 별 거 없다. 그저 그 분 뒤를 허겁지겁 따라갈 뿐이다. 마침내 우리 주님께서 이 더러운 세상을 뒤엎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그 날, 나도 주님께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길 소망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눅 17:10)”

@ 졸업 독후감.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