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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탈옥한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베드로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찾아갔다. 이는 성도들조차도 그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을 믿지 못할 만한 기적적인 일이었다(13-16절). 이 놀라운 일을 간증으로 남긴 베드로는 그 말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전하라고 하고 떠났다(17절). 한편, 베드로를 놓친 헤롯은 애꿎은 파수꾼들을 죽이고 가이사랴로 옮겨갔다(18-19절). 거기서 헤롯이 스스로 영광을 취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고 그는 곧 죽었다(20-23절). 그러는 동안 바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왔다(25절). 본문은 몇 가지 사건을 겹쳐 그리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베드로가 옥에서 나와 교회를 권면하고 떠난 일이고, 두 번째는 헤롯이 스스로 교만하다가 징..
요셉 자손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온다. 므낫세 자손은 자신들이 할당 받은 땅의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않았고, 그 결과 가나안 주민은 노역을 하면서 계속 그곳에 거주할 수 있었다(12-13절). 한편, 요셉 자손은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그들이 큰 민족이 되었는데 할당된 땅은 너무 좁다는 것이다(14절). 여호수아는 "스스로 개척하라"는 답을 주고(15절), 요셉 자손은 그 땅을 개척하기가 어렵다며 또 불만을 터뜨린다(16절).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능력이 있으니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라고 답한다(17절). 여호수아서를 통해, 요셉에게 넘어갔던 장자권이 어떻게 유다에게로 넘어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본디 르우벤이 야곱의 장자였지만 빌하와 동침하여(창 35:22) 장자권을 빼앗긴다(창 4..
어제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도 남방 지역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를 언급하고 있다. 에글론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헤브론(36-37절)과 드빌(38-39절)을 정복하여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를 손에 넣었다(40절). 이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정복하였고(41-42절) 무사히 길갈로 귀환했다(43절). 어제 본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싸우셨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고(42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명령대로 진멸하여 바쳤음이 기록되어 있다(40절). 한 가지 더 살펴볼만한 부분은,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본문이다(42절 "단번에"). 이 승리는 하나님이 언급되는 구절에 같이 나오고 있..
아이 성마저 이스라엘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가나안 족속들은 연대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한다(1-2절). 수많은 족속의 이름이 열거되고, 이스라엘이 오기 전까지는 서로 다투었을 그들이 "모여서 일심으로" 이스라엘을 대적한다. 반면 "히위 사람"(7절)의 일족인 "기브온 주민들"(3절)은 조금 다른 입장을 취했다. 히위 사람들의 왕은 분명 반이스라엘 연합군에 가입했지만(1절), 기브온 주민들은 화친을 청하고자 한 것이다(6절). 이는 기브온이 약한 성읍이라서가 아니었다(수 10:2). 도리어 이들이 하나님의 사적을 듣고 그 참된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9-10절). 기브온 주민들은 꾀를 내서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위장한다(4-6절). 비록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7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어젯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사도 바울이 우리 교회에 와서 직접 설교를 한다면, 과연 나는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이 참, 저 양반은 무슨 얘기를 저렇게 어렵게 해? 저렇게 얘기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겠어?"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60, 66) "어째 저리 말이 비리비리하냐. 설교자가 복음에 확신이 없나?"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고후 10:10, 12) 나의 귀..
바울은 이제 화제를 전환하여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1절). 하지만 그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 가지를 강조한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지만 지식보다 사랑을 추구하라(1절). 지식을 쫓으면 결국 무지에 빠지고(2절), 사랑을 쫓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3절). 이는 아마 우상의 제물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서 갑론을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로 각자가 옳다고 하며 목소리를 높이니 사랑이 사라진 것일게다. 바울은 대전제를 깐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다(4절)! 어떤 이들은 다양한 신들을 말하지만(5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을 믿는다(6절). 따라서 이를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혼합주의적 신앙을 갖고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7절). 즉, ..
고린도 교인들의 교만을 질책하던 바울은 "음행"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방인 중에서도 하지 않는, 계모와 관계를 갖는 악한 일(1절)에 대해 바울은 교회가 단호하게 그를 찍어내야 한다고 권고한다(2절). 바울이 비록 몸으로 함께 하지는 않지만, 고린도 교회의 모임에 영으로 함께 하여 그를 판단하고 "사탄에게 내주었"다(3-5절).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이 그를 찍어내지 않고 자신들의 처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6절). 누룩은 비록 그 양이 적을지라도 온 덩어리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6절).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 "누룩 없는 자", 즉 죄 없는 자라고 칭하며 이 죄의 문제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음을 상기시킨다(7절). 바울은 유월절 식사에서 먹는 무교병을 비유로 들어 누룩 없이,..
고린도 교인들을 질책하던 바울은 자신의 의도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권면이라고 말한다(14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15절). 그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을 닮기를 원했다(16절). 무엇을 닮으라는 말인가?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자신의 가르침과 행실이 상기되길 원했다(17절). 즉, 그렇게 기억난 "나의 행사"를 닮으라는 이야기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한편으로 바울이 오지 않을 것을 알고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다(18절). 바울은 그들을 향해 엄중히 경고한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말하며(19-20절), 그 때가 처벌의 때가 아니라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때가 되길 기원했다(21절). 이 부분..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라고 지칭되고 있는데(9절), 특히 바울과 아볼로와 같은 전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6절). 반면 "너희"는 문자적으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광의적으로는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킨다. 우선 바울은 자신들을 보며 배우라고 권면한다(6절). 바울파와 아볼로파로 갈라져 싸웠던 고린도 교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바울과 아볼로는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6절).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해진 것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지만, 실상 그 모든 것은 다 받은 것이었다(7절). (여기서 그들에게 전달해 준 주체가 하나님인지 사도들인지 불분명한데, 맥락상 사도들로 보는 것..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 즉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가치보다 우월함을 논증한다. 말의 지혜를 따르는 고린도 교인들조차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했다(26절). 성도들의 모습만 봐도 하나님이 육체의 기준을 따라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 "세상의 약한 것들",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선택하셨고(27-28절), 이로써 제 능력으로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없게 하셨다(29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세상의 기준과 무관하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제 능력을 자랑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이는 하나님께로서 온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30절). 다시 말해, ..
11월부터는 고린도전서를 묵상한다. 바울 서신의 기본적인 형태를 따라, 고린도전서는 인삿말(1-3절)과 기도(4-9절)로 시작한다. 먼저 인삿말에서는,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이 언급되며, 간단한 축복 인사가 뒤따라온다. 우선 발신인이 단순히 바울이 아니라 바울과 소스데네로 등장하는 것(1절)에 주목하자. 이 소스데네가 행 18:17의 회당장 소스데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고린도의 회당장이었던 그가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함께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어 수신인으로 고린도 교회와 더불어 "각처에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 언급되는 것(2절)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회람되기를 기대했던 것 ..
모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40일간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낸다(출 34:28). 이것만 해도 신적인 기적인데, 모세가 이제 증거판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와보니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이다(29절). 이는 다른 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게 만드는 기이한 일이었다(30절). 모세는 우쭐해지지 않고 그들을 불렀다. 먼저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와 대화했고(31절), 이어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32절). 말씀 전달이 끝나자 모세는 광채를 가리기 위해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33절). 이 과정은 계속 반복되었다. 하나님을 뵙고 그 말씀을 전달할 때는 수건을 벗고 있다가(34절) 그 이후에는 다시 수건을 썼다(35절)...
금송아지 숭배와 그에 따른 심판이 지나간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과 함께 할 것이고(2절) 결국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를 것이다(1, 3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가지 않으실 것이다(3절). 이는 이스라엘의 교만으로 인해 그들을 진멸하실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슬픈 소식이었다(4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cf. 출 33:15-16). 다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태도를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하시겠다고 하셨고(5절), 이에 이스라엘은 장신구를 떼고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하였다(4, 6절). 여기까지의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약간의 교만, 약간의 불순종도 참을 수..
이제 아홉 번째 재앙, '흑암 재앙'이 시작된다. 이번 재앙도 재앙 직전 경고의 말씀이 없이 바로 재앙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흑암이 임하게 하라고 명하시고(21절),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더듬을 만한 흑암"이 애굽 전역에 임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만 빛이 있었다(22-23절). 바로는 모세를 불러 떠나도록 명한다(24절). 하지만 단서가 있었으니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갈 것을 약속해야 했다(24절). 모세는 우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므로 다 데려가겠다고 말한다(25-26절). 바로는 이에 기분이 상해(27절) 당장 떠나가라고 명한다. 심지어 다시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협박까지 덧붙인다(28절). 모세는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
이번에는 '우박 재앙' 차례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명하사 바로에게 나아가게 하셨다. 이번 기사에서 아론이 사라졌음에 주목하자. 아론의 중요성은 점차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모세의 권위를 강조하려는 출애굽기 기자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달시키신 명령은 동일하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13절) 하나님은 애굽을 그대로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이었지만(15절) 애굽을 완전히 멸망시키시는 대신 당신의 능력을 보이실 정도만 일하실 것이다(14, 16절). 이 재앙은 교만함으로 히브리 백성을 속박하는 애굽 왕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17-18절).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재앙에 덧붙여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19절). 이는 애굽인(20-21절)이라도 아예 ..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계시를 전달한 모세와 아론은 이제 "바로에게 가서" 계시를 전달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1절) 바로는 이에 대해 콧방귀를 뀐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2절) 모세와 아론은 한 번 더 진정한다. 하나님이 나타나셨고 그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징벌이 내릴지도 모른다고(3절). 이에 대한 바로의 대답은 농땡이 부리지 말라는 것이었다(4절). 바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노역을 더 무겁게 하여 히브리 백성이 그들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였다(5-9절).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의 무지이다. 사실 당시의..
지난 본문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권고한 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거룩한 백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그 중에서도 교회 내 은사의 사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바울은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 권위를 통해 권면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3a절). 그 권면은 무엇인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이다(3b절). 말이 조금 모호하지만, 이후에 나올 내용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합당하게 처신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각 성도를 "지체"로 비유한다(5절). 몸의 각 지체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4절).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마서의 독자는 이방인이었다(롬 11:13). 따라서 로마서 11장을 잘못 읽으면 유대인들은 버림 받았고 이방인들이 선택 받았으니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시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바울은 이런 자세를 방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곡식이 거룩하기에 그로 만든 떡덩이가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기에 가지가 거룩하다(16절).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첫 곡식",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우리 주를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뿌리가 우리를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18절). 바울은 가지와 뿌리의 비유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본디 하나님으로부터 진액을 받던 일부 가지들..
복음의 요체를 설명한 바울은,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아무런 자랑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27절) 그 누구도 자신이 착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선한 행동을 해서 의로워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의 예상 독자는 유대인으로 보인다. 바울은 복음을 다시 설명하면서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라 하여 무조건 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칭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28절). 이 믿음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29-30절). 31절은 이후 로마서 4장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독자들의 반박을 예상하여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부분이다. 믿음이 칭의의 전제 조건이라면, 이제 율법은 "파기"된 것인가..
바울은 스스로를 "빚진 자"로 규정한다(14절). 이는 복음 전파의 의무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그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대상은 헬라인, 야만인,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등 인간의 분류를 뛰어넘는다(14절). 따라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15절).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의 목적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16절)으로, 그 내용은 "믿음"과 "의"이다(17절). 바울이 여기서 복음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지난 큐티와 이어서 생각해 볼 때, 이 본문은 상당히 흥미롭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한다. "교회"가 "복음"을 몰랐던 것인가? 날샘은 로마 교회가 처음엔 복음을 받았지만 핍박 때문에 확신을 잃었기에 다시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