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겸손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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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본문에서 유다의 우상 숭배를 통렬히 꾸짖으시고 심판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이제 "여호와의 날"을 말씀하신다(14절). 그 날은 용사들조차 다 우는 날(14절)이요, 온갖 환난과 어두움이 임하는 날(15-16절)이다. 그 날, 모든 사람들은 고통 당할 것이며(17절) 어떠한 수단으로도 자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18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민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하신다(18절).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희망의 가닥을 남겨두신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임하기 전에(2절) 모이라(1절). 여기서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기 위한 모임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할 때 심판을 면할 수 ..
오늘은 요약 없이 바로 분석으로 들어간다. 오늘 본문은 일곱 가지 "화"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화를 제외하고는 전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로 시작한다(13, 15, 23, 25, 27, 29절). 세 번째 화도 "눈 먼 인도자"(16절)로 호칭이 바뀌었을 뿐 가리키는 대상은 동일하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죄악을 드러내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화는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로 인한 것이다. 먼저 이들은 천국 문을 가로막는 존재로 나온다(13절). 이는 율법 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무거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운 것(마 23:4)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도 그 규정을 다 지키지 않으면서, 천국에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예수께서는 설교를 시작하신다(1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은 따르되 그들의 행위를 따르지는 말라(2-3절). 그들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자들이요, 외식하고 교만한 자들이다(3-7절). 예수께서는 "랍비"라는 이름(8절), "아버지"라는 이름(9절), "지도자"라는 이름(10절) 모두 쓰지 말라고 하신다. 이는 섬기는 자가 높아지고, 교만한 자는 낮아지는 진리 때문이다(11-12절). 이제 23장부터 25장에 걸쳐 마태복음의 마지막 설교가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설교의 문을 여는 말씀이다. 먼저 이 설교의 청자를 보면, "무리와 제자들"로 되어 있다(1절). 첫 설교가 제자들에게만 주어졌고(마 5:1),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베푸신 대부분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만 향했음을 생각해 볼 ..
제자들이 예수께 천국에서 큰 사람을 여쭙자(1절), 예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가리키시며 그런 자가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2-4절). 또한 그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상으로(5절), 실족하게 하는 것은 벌로 이어진다고(6-14절) 말씀하신다. 본문의 전반부(1-4절)는 천국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4절). 그런데 그런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것(3절)을 보아, "큰 사람"이라는 말은 실제로 크고 작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기보다 수사적 표현으로 보인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정 받는 존재를 "큰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렇다면 본문은 한 가지 아이러니를..
지난 묵상을 올린 지 석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 묵상을 소홀히 했던 것을 반성하며, 이제 9월 첫째 주부터 다시 말씀 묵상을 정리해서 올려보고자 한다. 우선 오늘 본문은 짤막하게 잡았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알고 "거기"를 떠나가셨지만, 사람들은 그를 따랐다(15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치시고(15절)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다(16절).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다(17-21절).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바리새인과 예수를 따르는 무리이다. 바리새인은 예수를 죽이려 했고(마 12:14), 무리는 예수를 따랐다(15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으로부터는 떠나가셨지만, 무리에게는 긍휼을 베푸셔서 병..
예수께서는 권능을 많이 보이신 도시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책망하셨다(20절). 고라신과 벳새다(21절)를 두로와 시돈에(22절), 가버나움(23절)을 소돔에(24절) 비교하셨다.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셨고(25-27절), 쉼이 필요한 자들에게 당신에게 나오라는 말씀을 하셨다(28-30절). 오늘 본문은 크게 책망, 기도, 초청의 세 덩어리로 나누어 본다. 그리고 그 핵심은 중간 덩어리, 즉 예수의 기도가 아닐까 싶다. 예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대조한다(25절). 어린 아이들만 알게 된 "이것"이 무언지가 조금 불분명하지만, 27절을 참고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
전도자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비유와 격언을 사용하여 미래를 알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떡을 물에 던지면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하며(1절), 먹을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권한다(2절). 우리는 흔히 구름을 보면 비를 예측할 수 있고 나무는 쓰러진 자리에 그대로 머무른다고 생각하지만(3절),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기에(5절) 우리의 예측을 믿어선 안 된다(4절). 그러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쉬지 않고 수고하여 위험 부담을 낮추라(6절).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본문은 구름과 비의 관계, 그리고 바람에 의해 쓰러진 나무의 방향을 예로 들어 우리의 예측을 묘사한다(3절). 하지만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5절). 본문은 당시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
다시 격언 모음집이다. 큰 주제는 우매와 지혜로 보인다. 우매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전체를 망하게 만든다(1절). 지혜로운 사람은 성공할 것이지만, 우매한 자는 망할 것이다(2절). 심지어 우매한 자는 지혜가 없음을 이리저리 떠벌린다(3절). 주권자의 분노 앞에서는 겸손하라(4절). 주권자가 우매하면 재난이 된다(5절).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 사람들이 낮은 자리에 있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게 된다(6-7절). 지혜가 없으면 제 꾀에 당하게 되고(8-9절), 미련하면 손발이 고생한다(10-11절). 오늘 본문은 우매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리 시체가 향수에 들어가면 향수 전체를 못 쓰게 만드는 것처럼, 우매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지혜도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1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이 능력이 있는 자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11절). 이는 분명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때"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12절). 지혜는 분명 큰 것이요(13절), 강한 군대 앞에서 성읍을 구할 만한 것이지만(14-15절), 그렇다고 지혜자가 항상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15-16절). 지혜는 권력보다(17절), 무력보다(18절) 낫지만, 그 역시 악인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18절). 본문에서 전도자는 지혜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분명 지혜는 이로운 것으로(13절) 다른 여러 가지 가치보다 낫지만(17-18절), 그럼에도 지혜자가 항상 복과 성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11, 15-16절). 이는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범위의 요소들 때문이다(12, 1..
일하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9절). 하지만 그 수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절). 다만 그 수고의 결과는 인간에게 감춰져 있기에(11절), 사는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12절), 그리고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즐거움(13절)이다. 계속 세대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지만(15절), 결국 이 모든 일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 하시는 것이다(14절). 이제서야 변죽만 울리던 본문이 본색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선포는 결국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면서 행복을 누리라는 권고로 귀결된다. 수고의 열매 때문에 수고한다면 그는 후회할 것이다(9절). 왜냐하면 그 결과는 인간의 손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11절). 수고는 그 자체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10..
지난 본문에서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를 언급한 바울은, 우리가 그들에 비해 나을 것이 없음을 논증한다. 우리 역시 죄인이었지만(3절)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었다(4-5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6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7절).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 우월감을 가질 것이 전혀 없다(딛 3:2). 오늘 본문은 다시 한 번 교만의 문제를 친다. 어쩌면 그레데 교인들은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믿으며 그들을 비방하고 정죄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우리도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음을 일깨워준다(3절). 하나님은 그런 우..
아하수에로의 분노가 사그라들자(1절) 주위 신하들이 새로운 왕후를 세울 것을 권한다(2-4절). 그 와중에 새로운 등장 인물이 소개된다. 모르드개(5절)와 에스더(7절)이다. 모르드개는 바벨론 포로시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혀 끌려온 유다인(6절)으로, 사촌 동생인 에스더를 양육하고 있었다(7절).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하수에로가 새로운 왕후를 뽑기로 결정한 내용과,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두 부분은 "아리따운 처녀"라는 중요한 단어로 연결되어 있다(2, 3, 7절). 이 단어로부터 에스더가 결국 왕후의 자리에 오를 것이 암시된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바벨론에게 정복 당한 약소 민족의 일원이었다(6절). 게다가 에스더는 부모 없는 고아였다(7절). 사회의 약자라 할 수 있는..
지난 본문에서 화평을 권유한 야고보는 다툼의 원인으로 정욕을 지목한다(1-3절).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4절). 성령은 이를 질투하신다(5절).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므로(6절) 하나님께 복종하고(7절) 그를 가까이 하며(8절) 주 앞에서 겸손히 행해야 한다(9-10절). 또한 야고보는 서로 비방하지 말 것을 다른 각도에서 권면한다(11절).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심판자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다(11-12절).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심판을 따를 뿐이다. 예수께서도 비판하지 말라 하셨고(마 7:1-2) 사도 바울도 야고보와 동일한 입장에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롬 14:4).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우리가 장래 일을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
아내를 통해 계시를 전해들은 마노아는 다시 그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한다(8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고, 아내가 밭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신다(9절). 아내가 부랴부랴 남편을 데리고 오자(10절)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양육에 대해 묻는다(11-12절). 그는 명령대로 철저히 지킬 것을 강조한다(13-14절). 마노아는 겸손하게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하나님께 여쭙는다(8, 12절). 그에 대한 답은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였다(14절).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 그의 답은 앞선 답(삿 13:4)과 다르지 않다. 포도주와 독주, 그리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 두 번(13, 14절)이나 강조되어 나오듯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자신들을 전쟁에 참여시켜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1절). 입다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2-3절). 결국 입다가 이끄는 길르앗 사람들과 에브라임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길르앗이 승리하였다(4절).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을 몰살시켰다(5-6절). 또 다시 에브라임이다. 그들은 일찍이 기드온에게 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다(삿 8:1-3).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입다에게 시비를 건다(1절). 그리고 이들은 길르앗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롱했던 것으로 보인다(4절). 이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에브라임은 실로 교만한 지파였던 것 같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던 길르앗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그들은 복수할 ..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 의아해 하고 있을 때(17절),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았다(18절).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그들과 함께 가라고 명하셨고(19-20절),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따라 나섰다(21-23절).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자(24절), 고넬료는 그 앞에 절하였고(25절) 베드로는 그를 일으켰다(26절). 베드로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27절) 율법을 어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왔음을 밝힌다(28-29절). 고넬료는 그런 베드로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설명한다(30-33절).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고넬료의 신실함이다. 고넬료는 "의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22절..
사울의 회심 과정을 그려낸 사도행전은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덧붙인다(31절). 이어 본문은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에서 펼친 사역을 소개한다. 룻다에서는 중풍으로 8년째 고생하고 있던 애니아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고(32-34절), 이를 본 룻다와 사론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35절). 베드로가 룻다에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욥바의 제자들은(38절) 신실한 여제자 다비다(36절)가 죽었음을 베드로에게 알렸다(37절). 베드로는 욥바에 도착하여 이야기를 듣고(39절) 기도하여 다비다를 살려냈다(40, 41절). 이를 본 욥바 사람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42절). 교회 부흥에 관한 설명 이후 짤막한 에피소드 두 편이 소개되면서 복음이 이스라엘..
어제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도 남방 지역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를 언급하고 있다. 에글론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헤브론(36-37절)과 드빌(38-39절)을 정복하여 "그 온 땅 곧 산지와 네겝과 평지와 경사지"를 손에 넣었다(40절). 이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정복하였고(41-42절) 무사히 길갈로 귀환했다(43절). 어제 본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싸우셨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고(42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을 명령대로 진멸하여 바쳤음이 기록되어 있다(40절). 한 가지 더 살펴볼만한 부분은, 이스라엘이 거둔 승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는 본문이다(42절 "단번에"). 이 승리는 하나님이 언급되는 구절에 같이 나오고 있..
수련회로 인해 3일간 큐티를 못했다. 해당 본문인 9장을 가볍게 살펴보자면, 8장 말미에서 스스로의 권리 포기를 선포한 바울이 "먹고 마실 권리"(고전 9:4)를 포기하는 이유를 좀 더 부연하는 대목이다. 그는 복음 전파가 자신의 사명이자 상급이며, 그저 복음이 증거되기만 한다면 자신은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10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는다. "조상들"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1-2절). 또한 광야에서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3-4절). 이는 애굽을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신약 교회의 용어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 사람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새 사람을 상징하는 가나안으로 향하면서 홍해를 지났고, 거기서 하나..
바울은 이제 화제를 전환하여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1절). 하지만 그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 가지를 강조한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지만 지식보다 사랑을 추구하라(1절). 지식을 쫓으면 결국 무지에 빠지고(2절), 사랑을 쫓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3절). 이는 아마 우상의 제물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서 갑론을박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로 각자가 옳다고 하며 목소리를 높이니 사랑이 사라진 것일게다. 바울은 대전제를 깐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세상에 하나님은 한 분 뿐이시다(4절)! 어떤 이들은 다양한 신들을 말하지만(5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만을 믿는다(6절). 따라서 이를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혼합주의적 신앙을 갖고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7절). 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