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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4:13-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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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 4:13-23

로보스 2018. 1. 31. 11:11

사마리아 군대의 위협 앞에,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격려하여 성벽 뒤에서 무기를 들고 지키라고 했다(13-14절). 사마리아 군대는 즉각적인 공격을 포기했고,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다시 공사를 재개했다(15절). 하지만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파수하는 식으로 공격에 대비했고(16, 21-22절), 심지어 공사하는 자들도 무장한 채 공사를 진행했다(17-18절). 공사 면적을 고려해, 나팔을 통한 비상 경보 체제도 갖추었다(19-20절).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에 앞장 서서 모범을 보였다(23절).


처음으로 부딪힌 심각한 문제에서, 느헤미야는 지난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도하는 한편 파수꾼을 두어 공사 현장을 지키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침입의 위협이 있었고(느 4:7, 11), 백성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었기에(느 4:10), 느헤미야는 백성 모두를 무장시켜 성벽을 지키게 했다(13절). 그는 백성을 독려하며 하나님과 가족을 위해 싸우라고 명한다(14절).


이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군대는 침공을 포기한다(15절). 본문은 그저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다고 말하는데(15절), 그 이후로도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침공의 위협은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즉, 사마리아 군대가 즉각 쳐들어 오려는 계획만 포기했을 뿐 계속 틈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다 사람들은 다시 공사를 재개하였지만(15절), 태평하게 진행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기록이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느헤미야는 백성을 반으로 나눠 한 그룹은 일하고 한 그룹은 파수를 보게 했던 것 같다(16, 21절). 파수는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즉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았다(21절). 반면 일하는 사람들은 무장을 한 채 일을 했는데(17-18절), 심지어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예루살렘 내에 묵으며 밤에는 파수를 보아야 했다(22절). 그리고 나팔을 통한 비상 경보 체제를 갖추어, 어디든 나팔 소리가 나면 달려와 전투에 참여하도록 했다(19-20절).


이것을 백성들에게만 시킨 것이 아니라, 느헤미야 본인부터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23절). 그는 "총독"으로서 평안히 지시만 내리고 빈둥거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옷을 벗지" 않고 파수와 공사에 참여했다. 게다가 그는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을 의식한다. 그는 전투에 대비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격려하며(14절),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선포한다(20절). 그리고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적이 침공을 포기하는 것을 보며 그 공로를 하나님께 돌린다(15절).


본문을 읽고 단순히 느낀 점을 말한다면, 느헤미야 같이 의욕이 넘치고 "올바른" 리더는 아랫사람들이 몹시 피곤해 할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에게 집에 가지도 말고 밤에 파수를 보라고 할 수가 있지? 만약 이 글이 성경에 실린 것이 아니었다면, 마음 편히 저자를 욕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본문은 성경에 실린 것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 뜻일까?


나는 느헤미야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에 주목하고 싶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때 그 목적에 맞는 사람을 쓰신다. 느헤미야는 "의로운" 독재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외적의 위협 앞에 놓여 있던 유다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예루살렘 성벽을 건설해야 하는 이 중요한 때에, 아랫사람들이 피곤할까봐 산발랏과 타협하는 리더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그가 필요한 곳에 그를 들어서 쓰신다. 나 또한 그렇게 쓰임 받고 있다고 믿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답게" 최선을 다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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