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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1:22-27 본문

큐티

삼하 11:22-27

로보스 2013. 4. 4. 21:12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술하고 있다. 요압의 명을 받은 전령은 다윗에게 가 변명과 함께 우리아의 전사를 보고했고(22-24절), 다윗은 관대하게 그 보고를 받는다(25절). 우리아의 장례(26절)를 마치고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 아내로 삼는다(27절).

본문을 읽다보면 다윗의 '완전 범죄'가 얼마나 정교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전령과 다윗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있었던 다윗의 신료들은 그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 전령의 보고를 보면(23-24절) 요압이 시킨 것에 비해 많은 정보가 추가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이 정보들은 우리아의 전사에 큰 개연성을 부여한다. 다윗 역시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라는 일반적인 원칙을 내세워 요압을 용서하고 있다(25절). 군사령관은 우발적인 전사를 보고했고, 왕은 이를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참 좋은 그림 아닌가?

밧세바를 데려오는 일에 있어서도 다윗은 "절차"를 지킨다. 율법에서 포로로 잡힌 여자는 자신의 부모를 위해 한 달 동안 애곡하는 기간을 가진 후에야 남편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신 21:13). 비록 죽은 남편을 위한 규정이 따로 있지는 않으나, 이 경우에도 비슷한 규정이 적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는 있다.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밧세바는 그 남편의 장례를 규정대로 치렀고(26절), 다윗은 그 이후에야 그를 아내로 맞이하였다(27절). 백성들이 보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본문이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로 끝났다면 다윗의 입장에서 더없이 완벽한 기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무심한듯 시크하게 그 뒤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하고 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그리고 이 한 문장이 이후 다윗의 삶에 큰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지 항상 의식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본문의 다윗만 봐도 오랜 기간 동안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죄악을 범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과연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 일을 행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 없는 일, 사람들이 보기에 칭찬받을 만한 일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하고 있는가.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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