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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장

로보스 2017. 2. 28. 11:05

오늘부터 역대기를 묵상한다. 역대상 1-9장은 족보의 나열인데, 그렇다 하여 생략하기는 좀 그렇고 조금 크게 나눠서 묵상해 나갈까 한다. 오늘은 역대상 1장을 묵상하겠다.


1-4절은 창 5장의 족보를 요약한다. 그리고 5절부터는 창 10장을 반복하는데, 5-7절은 창 10:2-4에, 8-10절은 창 10:6-8에, 11-16절은 창 10:13-18에, 17-23절은 창 10:22-29절에 발음의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차이 없이 대응한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가 창세기에는 아람의 아들로, 역대상에는 셈의 아들로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이어 24-27절은 창 11:10-26의 족보를 요약한다.


이제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을 소개하면서(28절), "방계"인 이스마엘의 족보(29-31절)를 창 25:13-16에서,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를 통해 얻은 아들들의 정보(32-33절)를 창 25:2-4에서 전재해 온다. 여기서도 역시 거의 변화 없이 문자 그대로 전재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이스라엘이었다(34절). 본문은 에서의 가문과 에돔 족장들을 소개한다(35-54절).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도 창세기 36장을 참고하는데, 요약 및 전재 과정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에서의 직계 아들들을 소개(35-37절)하면서 창 36:9-14의 족보를 정리하는데, "딤나"는 엘리바스의 첩이었음에도(창 36:12) 엘리바스의 아들로 소개가 된다(36절).


이어 본문은 자연스럽게 에서의 후손인양 "세일의 아들"을 소개하는데(38절), 창 36:20에서 세일은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으로 나온다. 실제로 세일이 에서의 후손일 수는 있으나, 창세기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지는 않음을 감안해 볼 때, 역대기 기자의 변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일의 자손에 대한 소개(38-42절)는 창 36:20-28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자녀"가 "아들"로 바뀌면서 명백한 딸(창 36:25,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은 족보에서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돔 땅의 왕들을 열거하는데(43-54절), 이 역시 창 36:31-43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흥미로운 것은, 창세기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역대상에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유사한 정도를 지나,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정보는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다. 이는 역대상 기자가 본문을 기록할 때 창세기가 이미 문서화되었고, 역대상 기자가 그 내용을 옮겨서 역대상을 기록했음을 방증한다.


이 족보가 기록된 의도는 무엇일까?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이 이 본문을 읽으면서 (혹은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보자. 당시 창세기가 이미 기록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면, 이 요약문을 들으면서 그들은 창세기의 장구한 역사가 눈 앞에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족보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어진다. 그리고 그 족보는 이삭으로, 야곱으로 흘러간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스마엘의 족보와 에서의 족보이다. 이들은 분명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었음에도, 본문은 그들의 족보를 공들여 수록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던 야벳 자손과 함 자손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그 계보를 수록한다. 이를 통해 기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 하나님께서 온 인류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선포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 땅에 모인 유대인들(대상 9:1-34)에게, 역대상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친히 맺으신 언약의 백성임을, 그리고 그들을 핍박하던 앗수르(17절)와 이집트(8절), 가나안(8절) 등도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 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 땅에 미친다.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족속 하나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없다. 그러니 두려워 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하라. 이것이 역대상 1장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하나님을 아는 자든 모르는 자든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하나님의 신민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덕분에 하나님의 언약 아래 들어가게 된 내가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담대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나가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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