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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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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1-10

로보스 2016. 11. 29. 10:57

예수를 사로잡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준다(1-2절). 그 사이, 예수를 판 유다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돈을 돌려주려 하였다(3-4절).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자(4절) 성소에 돈을 던지고 자결한다(5절). 대제사장들은 그 돈을 거둬(6절) 토기장이의 밭을 산 후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7-10절).


마태는 예수의 수난 기사에서 예수가 등장하는 장면과 다른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긴박감을 더한다. 이전 본문에서 예수가 재판 받는 장면(마 26:59-68)과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마 26:69-75)이 잇따라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로마 총독부로 이감되는 장면(1-2절)과 가룟 유다가 반성하고 자살하는 장면(3-10절)을 번갈아 보여준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밤을 새워 예수를 죽일 죄목을 꾸민다(1절). 그는 이미 사형으로 결정되었지만(마 26:66),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cf. 요 18:31). 구체적인 고발 사항이 무엇이었는지 마태는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이들은 예수께 최대한 많은 죄목을 끌어다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cf. 마 27:13). 그 작업을 마치고, 자신감이 붙은 그들은 예수를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갔다(2절).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3절). 그는 예수를 판 값으로 받은 은전 서른 닢을 돌려주러 찾아갔지만 거절당했고(3-4절), 성소에 그 돈을 던져 넣은 후 목을 매 자살했다(5절). 대제사장들은 그 돈을 "핏값"이라 부르며 성전고에 넣어둘 수 없다고 말한다(6절). 이는 유다의 목숨과 바꾼 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율법의 권위자들이었던 그들은, 죽음과 결부되어 있는 그 "부정한" 돈을 성전에 보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신 23:18).


그들은 고민 끝에 그 돈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마련하기로 결정했다(7절). 이곳은 "핏값"으로 산 땅이기에 "피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8절). 마태는 일견 의미 없는 세부 사항을 나열했는데(유다가 받은 금액, "피밭"의 원래 주인), 이는 사실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다. 마태는 다음 구약을 인용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슥 11:13) 흥미롭게도 마태는 이 본문을 예레미야의 것으로 잘못 인용하는데(9절), 많은 주석가들이 이 부분에서 난색을 표한다. 나는 이 큐티에서 이 문제를 깊이 다루지 않겠다.


유다는 예수가 정죄되는 것을 보고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후회하며 목을 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예수의 정죄와 재판은 이미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예수를 속죄 제물로 쓰시기로 작정하셨고, 그랬기에 유다의 저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어떻게 죽고(cf. 행 1:16-20) 그의 "핏값"이 어떻게 사용될지까지(9-10절)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 분의 뜻대로 진행된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에 두려움 없이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실패할 수도 있고, 계획에서 이탈할 수도 있겠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의 나라가 임하기를, 그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 뿐이다. 오늘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히 나아가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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