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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21-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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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21-28

로보스 2016. 9. 22. 21:45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가시자(21절)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타나 딸을 고쳐달라고 간구한다(22절). 예수께서는 그를 무시하셨고(23절) 제자들이 청해도 듣지 않으셨다(24절). 여자가 예수께 절하며 도와달라고 하자(25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옳지 않다고 답하셨고(26절), 그러자 여자는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는다고 답하였다(27절).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크게 보시고 딸을 고쳐주셨다(28절).


해석이 어려운 본문이다. 여기서 예수는 배타적인 인종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 8:5-13에 나오는 백부장의 기사를 참고해보면, 예수께서 그저 이방인을 배척하신 것은 아님을 볼 수 있다. 백부장은 자녀도 아닌 하인을 위해 예수의 도우심을 구했고, 예수께서는 기꺼이 고쳐주겠다고 하셨다(마 8:7). 그리고 해당 기사의 결론은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우선 본문이 "개들"로 표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대상이 이방인 전반이라기보다 "가나안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행 구절인 마가복음 7:26에서는 여인을 "헬라인"이자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적시하고 있는 반면, 오늘 본문은 그저 "가나안 여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마태가 예수의 말씀을 나름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구약에 익숙한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하는 존재였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에 우상을 가지고 들어온 원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 시에 이들을 모두 제거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이 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바람에 그 이후로도 계속 시험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 여자가 예수께 나아왔다면,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가 단순히 치유만을 위해 잠시 예수를 인정하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자신의 구원 사역이 목표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한다. 그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오셨다(24절). 따라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께서도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다.


그 다음 대화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자녀로, 그렇지 않은 자들을 개들로 불러 구분한다(26절). 놀랍게도 여자는 그 구도를 인정한다(27절). 즉, 본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부스러기"를 구한다(27절). 본인이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이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임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부스러기"만으로도 자신의 딸이 나을 것임을 믿을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제서야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딸을 고쳐주셨다(28절).


본문을 단순히 혈통적인 유대인/이방인의 이분법 구도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 도리어 본문은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는 본문의 여자가 이방 신을 섬기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기적을 보일 수 없기에, 예수께서는 그를 거절하셨다. 하지만 대화를 통하여 드러난 것은, 그가 사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자였다는 것이다. 그 "믿음이 크"다(28절).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참된 신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 여인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 본다. 나는 하나님만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가? 다른 무엇, 예컨대 나 자신이나 세상의 가치가 우상의 자리에 올라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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