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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4:1-12 본문

큐티

삼하 4:1-12

로보스 2013. 3. 15. 10:59

오늘 본문은 이스보셋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력해졌다(1절). 이 때 바아나와 레갑(2-3절)이라는 군지휘관들이 이스보셋을 암살하고(5-7절) 그의 머리를 베어 다윗에게 바친다(8절). 다윗은 이들을 칭찬하기는커녕 이들을 엄히 꾸짖고(9-11절) 사형에 처한다(12절). (4절에 나오는 뜬금 없는 므비보셋 이야기는 삼하 9장의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다.)

날샘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들을 꾸짖는 다윗의 말에 주목한다. 그는 므비보셋을 "의인"으로, 레갑과 바아나를 "악인"으로 부르며 그들이 "피 흘린 죄"를 엄히 다룬다(11절). 그렇다면 어째서 레갑과 바아나는 악인일까? 정말 날샘이 이야기하듯 "암살"은 "비겁한" 행동이기 때문에 악한 것일까? 아니면 조조가 군주를 죽이고 온 장수들을 엄하게 다뤘던 것과 같이 주군을 배신했기 때문에? 글쎄, 난 이들의 죄목은 암살이나 배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암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몇 개 있다. 먼저 모압 왕 에글론을 암살한 에훗의 이야기(삿 3장)를 생각해 보자. 에훗은 공물을 바치기 위해 에글론을 알현하던 중에 "은밀한 일"을 아뢰려는 듯 하여 둘만의 시간을 만들고(삿 3:19) 그 틈을 노려 숨겨 간 칼로 에글론을 찔러 죽인다(삿 3:21-22).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비열한 행동이지만, 성경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부른다(삿 3:15, 28).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암살한 야엘의 이야기(삿 4장)는 어떠한가? 시스라 진영은 야엘의 가문과 평화를 이루고 있었기에(삿 4:17) 시스라는 의심 없이 야엘의 장막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삿 4:18-20). 야엘은 그 신뢰를 '비겁하게' 이용하여 그를 암살한다(삿 4:21). 이 사건 역시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로 칭송받는다(삿 4:9, 삿 5장).

일이 비겁한 정도로 보자면 에훗과 야엘의 이야기가 더 비겁한 것 같다. 신뢰받던 자들이 그 신뢰를 역으로 이용하여 뒷통수를 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들의 행동을 의롭다고 평가하고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칭한다. 반면 바아나와 레갑의 행동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맥락 속에 있지만 "악행"으로 평가받는다. 어째서 그러한가?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사울이나 이스보셋이나 모두 "의인"(11절)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 없이 그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인 것이다. 반면 바아나와 레갑은 사울과 이스보셋을 각각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라고 부르며(8절) 인간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다. (나는 바아나와 레갑이 정말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으로 이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름의 의협심이 있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자꾸 독심술을 쓰는 건 좋지 않다.) 동기가 어떻든 간에, 바아나와 레갑의 행동은 '하나님의 백성'을 전혀 '하나님의 백성'으로 대하지 않은 불손한 행동이었던 것이고, 이를 다윗은 반역죄와 같은 엄한 형벌로 다룬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하나이다. 설사 현재 나와 의견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달라서 하나가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으로 품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지 고민해 보니, 언뜻 떠오르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분명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그들이 교회 내에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해지고 언짢아진다. 그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대신, 그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롬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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