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os credit

행 21:7-26 본문

큐티

행 21:7-26

로보스 2015. 6. 29. 23:01

바울 일행은 돌레마이에서 형제들을 만났고(7절) 이튿날 가이사랴에 도착해 빌립 집사의 집에 머물렀다(8절). 선지자 아가보가 유대에서 와서(10절) 바울의 고통스러운 미래를 예언하였고(11절), 사람들은 울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유하였지만(12절) 바울은 듣지 않았다(13절).


바울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15절). 가이사랴의 제자들이 동행하였고(16절), 예루살렘의 형제들은 바울 일행을 기쁘게 맞이했다(17절). 바울은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장로들을 만나(18절) 이방 사역을 보고하였다(19절). 장로들은 바울에게 유대인 사이의 오해(20-21절)를 불식시키기 위해 율법을 지켜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권하였고(22-25절), 바울은 그 충고를 따랐다(26절).


본문은 바울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예루살렘에 당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폭풍 전야와 같은 담담함이 느껴진다. 지난 본문에 이어 바울을 아끼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를 만류해 보지만 바울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행 20:22)고 주장한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음까지 불사한다(13절). 결국 사람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14절)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편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진심으로 환영하고(17-20절), 바울에 관한 헛소문, 즉 이방에 거하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율법을 거부하도록 가르쳤다는 소문(21절)을 불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특히 이는 믿는 자 중에서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 함이었다(20절).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을 모든 이들 앞에서 보이되(23-24, 26절), 다만 이방인들에게는 율법의 굴레를 씌우지 않았던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25절).


본문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교회 내 형제 자매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바울의 고난을 미리 안 지체들은 바울이 그러한 고난을 받지 않기를 원했다(12절). 이는 바울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14절). 또한 바울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예루살렘 장로들은 바울이 믿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길 원했다(22-25절).


특히 율법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 나는 작금의 상황이 겹쳐져 보인다. 동성 결혼 금지가 위헌이라는 미 연방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면서 특히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같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도 어떤 이들은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보이는 반면, 어떤 이들은 판결의 결과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어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을 율법 그 자체와 동치시키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바울의 태도로부터 배울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자유한 자였지만 율법을 귀히 여기는 자들을 잃지 않기 위하여 율법 결례를 따랐다. 동성애 문제에 있어 전통적인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라도, 이로 인해 시험에 들 수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그 뜻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동성애 문제를 전통적 교리로 판단하는 자들도 역시 상대편을 배려하여 그 목소리를 조금 낮추는 것이 옳지 않을까? 교회와 복음을 위해 보여준 바울의 유연함이 아쉬운 시점이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0-2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