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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 본문

묵상

나의 삶과 죽음도 아낌없이 드리리

로보스 2010. 10. 11. 00:28
나는 예전부터 그런 기도를 하곤 했다. "내 생명을 취하시더라도 여자친구가 구원 받는다면 드리겠습니다." 얼핏 보면 대단한 신앙의 고백이요, 순교자의 정신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러한 나 자신을 뿌듯하게 여겼고, '왜 이런 기도를 하는데도 주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걸까?'라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오늘 대학부 예배 중에 <밀알>을 부르게 되었다. 찬양하는 중에 갑자기 주님이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다. "얘야, 네 생명은 됐고, 네가 매일 두 시간씩 떼어서 기도할 때 그걸로 여자친구가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네 시간을 나에게 줄 수 있겠니?" 머뭇거려졌다. '내가 그냥 칵 죽어버린다면 그건 드릴 수 있겠는데, 삶을 살면서 그 일부를 드리는 건...' 주님의 물음은 이어졌다. "만약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양자역학 학점이 C가 나오고 대신 여자친구가 구원을 받는다면, 그렇게 학점을 줄 수 있겠니?" "만약 네가 계획하고 있는 유학의 길이 막히고 대신 여자친구가 구원을 받는다면, 그렇게 네 길을 포기할 수 있겠니?"

그리고 나는 울었다. 내 고백은 다 거짓이었고 내 찬양은 다 가식이었다. 내 생명을 주님께 아낌없이 드린다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고민도 수반하지 않을 때에 한해서만 유효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게는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이, 학점이, 진로가 내 생명보다 귀중했고, 이들을 요구하실 때 나는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다.

대예배 설교는 "세상의 소금"에 관한 내용이었다. 소금이 소금다우려면 자기 자신을 소금을 쳐서 불로 태우는 화제로 드려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다(막 9:49). 그 말씀을 듣는데 문득 다음 구절이 떠올랐다.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은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 제물이다. 나의 거짓된 고백처럼, 내 삶을 단번에 주 앞에 불살라버리는 것은 어쩌면 쉬울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 것의 일부를 떼어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쉽지 않다. 그 물질을 가지고, 그 시간을 가지고, 그 노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더 시급해 보이고 더 중요해 보이는 세상 일들이 있기에.

코디가 이번 주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이렇게 답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가식 뿐인 고백은 집어치우고, 내게 귀중하고 긴요한 이 시간부터 주님께 드리도록 연습해야겠다. 이 시간을 쓰면 숙제를 다 마칠 수 있고, 이 시간을 쓰면 시험 성적이 좀 더 오를지도 모르고, 이 시간을 쓰면 육신의 즐거움을 도모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주님께 드리자. 예수의 영이여, 이 연약한 자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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