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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올슨, <인디오의 친구 브루츠코>, 복있는사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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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올슨, <인디오의 친구 브루츠코>, 복있는사람

로보스 2010. 6. 6. 00:43
@ 겨자씨 학교 독서과제.

슈바이처 박사, 아드니람 저드슨, 토마스 선교사, 언더우드 선교사, ……. 어려서부터 참 많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형성해 왔다. 특히 그 이미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현지 문화의 기독교화(Christianization)이었다. 바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열등한 현지의 문화를 우월한 기독교로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화나 전설 따위를 믿는 사람들에게 서구식 기독교관을 주입하여 그런 미개한 사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 말이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갈등과 다툼은 선교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필요하다면 강압적으로라도 서구식 기독교 가치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에는 이 개념에 대해 별 문제를 못 느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특히 문화 인류학을 접하면서 이러한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다. 현지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식 기독교관을 강제로 주입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지만, 만약 이 과정이 복음 전파에 필수적이라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복음 전파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복음을 택할 것인가, 문화적 상대성을 택할 것인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그러던 와중 만난 이 책, <인디오의 친구 브루츠코>는 이 두 가지 길이 아닌 또 다른 길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현지 문화를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 기독교 문화로 변화시켜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아니요, 이 변화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복음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요, 바로 복음을 현지화(localization)하여 전파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브루스 올슨 선교사는 현지 문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현지 문화 속에 덤벙 뛰어 들어가 현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했다. 이는 문화 인류학에서 이야기하는 바람직한 연구방법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올슨 선교사는 복음을 증거할 때 현지인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설명하는 부분(210-211쪽)을 살펴보자. 그는 모틸론족의 사냥 습성을 이용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설명한다. 모틸론족 사람들은 그 설명을 이해하고 복음을 받아들인다. 만약 올슨 선교사가 서구식 전도 방법을 적용해 다분히 사변적인 안셀무스의 속죄론을 설명했다면 과연 모틸론족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 이야기가 소개된 장(章)의 제목은 “인디오가 되신 예수”이며, 이 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와 함께 끝난다. “바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수는 검은 피부에 검은 눈을 가졌고 요의를 입고 활과 화살로 사냥을 하셨다는 것을. 그가 만난 예수는 모틸론인이었다.” (214쪽) 어쩌면 나는 서구 중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파란 눈에 갈색 머리를 한 유럽인이었고, 유대의 어느 시골에 살며 나무를 깎던 목수였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그런 모습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어떠한 모습이 되었건 간에, 인간의 모습을 하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는 그 사실이다. 이것이 복음의 요체요, 우리가 증거해야 할 내용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와 같은 중요치 않은 사실 때문에 복음 전파가 가로막힌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복음의 핵심을 전하기 위해, 중요치 않은 외연은 문화적 상대성을 십분 발휘해 현지인들에게 거부감을주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올슨 선교사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문화의 상대성과 복음 전파에 관한 오래된 고민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두 가지를 절충하는 것이 이야기처럼 쉬운 것만은 아닐 테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현지에서 고민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좋은 본을 보여준 올슨 선교사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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