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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사단은 '왜' 타락한 천사인가

로보스 2009. 9. 15. 09:45
웨인 그루뎀의 <조직신학> 상권 20장 '사단과 마귀들'에 보면 사단의 정체에 대해 타락한 천사라는 (보편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견해는 어떠한 성경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

그루뎀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사 14:12-14)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사야 14장을 읽어보면 문맥상 이 구절이 사단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사야 14장은 최소한 문자적으로는 바벨론 왕에 대한 저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루뎀도 이것을 인식했는지 "이 표현은 그냥 인간에게 쓰였다기에는 너무 심한 표현이므로 사단을 묘사한 것으로 본다."라는 식으로 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어떠한가?

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7그런즉 내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8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를 바다 가운데에서 죽임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가운데에서 죽게 할지라 (겔 28:6-8)

10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의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솟아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11내가 여러 나라의 능한 자의 손에 넘겨 줄지라 그가 임의로 대우할 것은 내가 그의 악으로 말미암아 쫓아내었음이라 12여러 나라의 포악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 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에서 떠나매 (겔 31:10-12)

에스겔 28장은 두로 왕에 대한 예언이고 31장은 바로에 대한 예언이다. 이들은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닌가? 보기에 따라선 이들 구절도 인간에게 쓰기엔 너무 심한 표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성경은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 알레고리적인 의미를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난해한 책이 되어버린다.

내 생각은 이렇다. 예언서를 살펴보면 이방 왕들을 향한 심판을 예언할 때는 대개 "상당히 강력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사야 14장도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사야 14장이 인간에 쓰기엔 너무 심한 표현이므로 사단을 묘사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루뎀은 인간에게 쓴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적 존재를 묘사한 예로 시편 8편 등을 제시하는데, 메시야에 대한 알레고리는 조금 특수한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 나는 사단은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나는 사단이 타락한 천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명시적으로 그 믿음을 지지해주는 구절이 없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교회 내의 전통, 더 올라가서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기인한 믿음이 아닐까 싶다. 확실한 것은,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의 입장에서는, 사단의 기원이 무엇이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이 세계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 뿐. 우리도 그쪽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 아, 혹시 베드로후서와 유다서 말씀을 들고 나올지 모르겠는데, 거기엔 복수형 '천사들'이라고 되어 있으며,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사단이라는 명시적인 표현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확실한 근거"가 되기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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