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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3:8-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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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23:8-17

로보스 2013. 5. 28. 00:05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다윗의 뛰어난 세 용사인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10절), 삼마(11-12절)에 대한 소개가 나오고, 여기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다윗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진에 뛰어든 에피소드가 이어진다(13-17절).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세 용사와 "백성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띈다. 여기서 "백성들"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그들은 싸움에서 도망쳤다가(9절) 엘르아살이 블레셋을 무찌르자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다(10절). 또한 삼마의 전승 기록에서도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는 역할로 등장한다(11절).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인데(10, 12절), 왜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어쩌면 본문은 참된 "용사"가 얼마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에서 도망치지만, "용사"는 전장에 남아 끝까지 싸운다. 하나님은 이 적은 수의 용사들을 통해 일하신다.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충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윗의 하찮은 소원(15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또 다른) 세 용사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17절)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16절) 그 소원을 이루어온다. 여기서 우리는 왕에 대한 충성을 본다. 내 생명이 왕의 소원보다 중하지 않다. 문득 계시록의 명령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가 떠오른다.

두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왕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이 충성의 길은 목숨을 내놓고 가야 할 정도로 어려운 길이다. 그래서 그 앞에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한다. 하지만 참된 용사라면 그 길에서 "손이 칼에 붙기까지"(10절) 싸울 것이다.

주께서는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라고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죽도록 충성하는 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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