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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9:9-15

로보스 2013. 5. 12. 01:31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다윗을 왕으로 옹위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자(9-10절), 다윗은 유다 족속에게 전갈을 보내(11절) 유다 족속이 먼저 자신을 옹위하도록 한다(12절). 특히 다윗이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마사를 지휘관으로 삼자(13절) 유다 족속은 발벗고 나와 왕을 맞이한다(14-15절).

 

유다 족속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은 내란에서 압살롬 편에 섰던 반란군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다윗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윗은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낸 지도자(9절)였다. 한 때 화려하게 보였기에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결국 "싸움에서 죽"어 그 비참한 결말을 드러냈다(10절).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지도자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올바른 지도자를 향해 얼굴을 돌린 것이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다윗이 보인 편애였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다윗을 모셔왔다면 별 분란이 없었겠지만, 다윗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친족 유다 족속을 챙긴다(11-12절). 특히 자신의 조카(대상 2:17)라는 이유로 한 때 압살롬 군의 지휘관이었던 아마사(삼하 17:25)를 요압을 대신해 지휘관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13절)은, 유다 족속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충분했지만(14절) 자신을 따른 충복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처우였을 것이다. 분노를 못 참은 요압은 훗날 결국 아마사를 죽이고 만다(삼하 20:8-10).

 

이와 같은 편애는 유다 족속에 대한 분노를 불러오게 되고(삼하 19:41-43), 결국 또 한 차례의 내란(삼하 20:1-2)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앙금이 훗날 남북 왕국을 갈라지게 하는(왕상 12:16) 단초가 아니었을까.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는 자가 정의를 행하지 못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고 있는가? 나와 가까운 사람을 더 챙기고 사랑하는 것, 이것은 이방인도 하는 일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마 5:47).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것과 같이(마 5:45), 올바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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