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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8:19-27

로보스 2013. 5. 8. 23:19

아히마아스는 요압에게 자신이 승전보를 전하게 해달라고 청하나(19절) 요압은 압살롬이 죽었음을 이유로 들어 이를 거절하고(20절) 대신 구스 사람을 보낸다(21절). 반복되는 청원을 못 이긴 요압이 마침내 허락하자 아히마아스는 지름길로 달려가 구스 사람을 앞선다(22-23절). 예루살렘의 파수꾼이 아히마아스가 오는 것을 발견하고(24-25절) 이어 구스 사람이 오는 것을 발견한다(26절). 다윗은 아히마아스라면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27절).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삼하 15:27)는 본래 요나단과 더불어 다윗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던 자(삼하 15:36)였다. 그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여 승전보를 전하고자 했다(19절).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에게 알려지면 다윗이 실망할 것을 알기에(20, 22절) 아히마아스 편에 승전보를 전하기 꺼려했지만, 아히마아스는 지혜롭게 승전보를 전할 줄 알았다(삼하 18:28). 그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었다(27절).

"좋은 소식"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구절이 하나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사 52:7) 이 이사야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통치와 그 평화를 묘사하는 말씀이다. 이사야서가 그리는 최후의 왕국이 회복된 다윗 왕국임(사 11장)을 고려해 보면, 오늘 본문의 "좋은 소식"은 이 이사야서 본문에 나오는 "좋은 소식"의 모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한 소식이기 때문이다(cf. 삼하 18:28).

최종적인 "좋은 소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울에 따르자면,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롬 10:14-17). "복음"의 어원은 "승전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어둠 권세를 물리치시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신 바로 그 소식(고후 2:14), 그것이 복음인 것이다. 아히마아스는 이 땅의 불완전한 승전보를 전하는 것에조차 충실했다. 그렇다면 온전한 승전보를 지닌 우리는 어때야 하겠는가? 목마른 자들에게 냉수를 전해주는(잠 25:25) 합당한 전령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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