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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5-19 본문

큐티

눅 21:5-19

로보스 2019. 1. 15. 10:59

오랜만의 큐티다. 연말연시에 이리저리 다녀오느라 바빴다. 다시 페이스를 올려 큐티를 재개하려 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 어떤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예수께 아뢰었다(5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6절). 사람들은 그 때와 징조를 다시 여쭈었고(7절), 예수께서는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8절) 두려워 하지 말라며(9절) 구체적인 예언을 주신다.


장차 나라들 간의 큰 전쟁이 있을 것이고(10절), 많은 자연재해와 하늘의 "징조"들이 일어날 것이다(11절). 그리고 그 전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나(12절), 그 박해가 증거가 될 것이다(13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미리 고민할 것 없이(14절), 그 때에 예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다(15절).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들을 넘겨 줄 것이고(16절), 모든 사람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17절). 하지만 예수께서 그들을 지키시기에(18절) 그들이 인내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19절).


본문은 당시 교회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읽어낼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AD 70년에 무너졌다. 예수의 답 속에는 성전이 무너질 때(눅 21:24)와 그가 재림하실 때(눅 21:27)가 모두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의 병행 구절(마 24장)에서는 실제로 제자들이 성전이 무너질 때와 세상 끝을 모두 여쭙는다(마 24:3).


예수께서는 먼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자칭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8절). 그들은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할 것이지만, 사실 거짓 그리스도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때"가 성전이 무너질 때를 가리킨다고 보기에는 이 시점으로부터 너무 가깝기에, 말세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다. 그리고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있을 것인데, 이는 말세의 시작을 알린다(9절). 10-11절은 바로 이 "난리와 소요"가 무엇인지 부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과 자연 재해, 그리고 "무서운 일"과 "징조"가 있을 것이다.


말세가 이르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 큰 박해가 임할 것이다(12절). 재판정에 끌려 가더라도 예수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기에(15절) 두려워 하지 말고(14절) 도리어 그 기회를 증거로 삼으라(13절). 가족들마저 믿는 자들을 버릴 것이고(16절),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는 자들을 미워할 것이다(17절). 하지만 예수께서 그들을 지키실 것이기에,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이다(19절). 이 말씀은 실제 박해 가운데 있던 초대 교회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 이제 이 본문을 적용해 보자. 이 본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디까지 적용되는가? 나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벌어질 일로 읽어도 안 되지만, 반대로 그저 상징으로만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예수께서는 역사적으로 일어날 일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일 가운데 성도들이 지켜야 할 태도를 말씀하신다. 따라서 섣불리 본문의 "징조"들을 해석하려 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위주로 살펴볼까 한다.


우선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날 것이기에 그들에게 미혹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8절). 이는 비단 스스로 구세주라 칭하는 자들 뿐 아니라,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속이는 많은 가치와 사상들(공산주의, 과학주의, 배금주의)까지 포함할 것이다. 또한 많은 환난이 있겠지만(9-11절), 두려워 할 필요 없다. 그 환난 가운데에서도 예수께서는 우리를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9, 18-19절). 특별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을 당할 수도 있는데(12-13, 16-17절), 그 앞에서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시고 지키실 것이다(14-15, 18-19절).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우리는 말세를 살아간다. 오늘 본문은 이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깨어서 담대히 살아가야 함을 가르친다. 거짓 메시지를 분별하며, 세상의 협박을 두려워 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나가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특별히 구직의 어려운 시기에 자꾸 세상의 메시지에 빠져드려는 유혹이 든다. 주께서 나를 끝까지 지켜주시기를 다시 한 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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