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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6:14-31

로보스 2018. 11. 13. 12:14

예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눅 16:13),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14절). 이들은 아마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오늘날도 비슷한 종교 장사꾼들이 있다.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건만,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라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자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그들은 사람 앞에서 의로운 척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 그들의 마음은 타락해 있었다(15절). 예수께서 이어 율법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는 아마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례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이 유일한 권위였지만, "그 후부터는", 즉 예수께서 오신 이래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직접 선포되었다(16절). 따라서 더 이상 율법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예수께서 율법을 부인하신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한 획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다(17절). 그러면서 간음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시는데(18절), 이 안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가르침을 좀 더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신다. 따라서 예수께서 율법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 것은 율법의 문자적인 표현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가르쳐 주신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보인다.


이렇게 율법에 집착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고발하시는 예수께서는, 본래의 질문, 즉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에 대해 비유를 통해 답하신다. 비유 속에는 부자와 나사로라는 거지가 등장한다(19-21절). 부자는 호화롭게 살았고, 거지는 그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연명하며 비참하게 살았다. 둘 다 죽고 난 후에 부자는 음부로 떨어져 고통을 받았지만(23절),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22절).


불꽃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통해 물 한 방울이라도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24절). 아브라함은 그에게 단호하게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은 자는 죽은 후에 괴로움을 받고, 살았을 때 고난을 받은 자는 죽은 후에 위로를 받는다고 말한다(25절). 더하여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은 서로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26절).


그러자 부자는 대신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 그들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청한다(27-28절).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 즉 구약성경이 있다고 답한다(29절). 부자는 죽은 자가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나면 그들이 믿을 것이라 말하지만(30절), 아브라함은 성경에서 깨우치지 못한 자는 그런 기적이 있더라도 권면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31절).


이 이야기는 사후 세계를 다루고 있기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몇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한 가지는, 생전의 생활이 사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본문에서 나사로는 현세를 비참하게 살았기에 사후 세계에서 위로를 받았고, 부자는 현세에서 즐기면서 살았기에 사후 세계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종류의 사후 세계는 서로 교류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부자는 그저 부를 즐겼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고통을 받은 것일까? 나는 맥락상 본문은 '율법'을 배경에 깔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율법과 선지자"(16절), "모세와 선지자들"(29, 31절)이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에서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부자의 모습은 향락에 빠져 이웃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모습이다(20-21절). 즉, 그는 율법을 준행하지 않는 부자였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하나님과 재물 중에 재물을 더 우선하여 섬긴 자였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준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러면서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기보다 문자 하나하나에 집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물을 숭배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따끔하게 말씀하신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고, 율법이 결코 폐하지 않을 것은 맞지만 그 계명 하나하나가 그대로 남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나의 삶에서 최우선 순위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돌아본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무언가 행위나 자격을 통해 그것을 대체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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