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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18-36

로보스 2018. 9. 11. 10:48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당신의 소문을 물으신다(18절). 이들은 눅 9:7-8을 받아 세례 요한이라는 소문, 엘리야라는 소문, 선지자라는 소문을 전달한다(19절). 엘리야라는 소문은 아마도 말라기의 예언(말 4:5)을 의식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다(20절). 베드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답을 내놓는다(20절).


이 답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시고(21절) 수난 예언을 하신다(22절). 이와 같은 구조가 마태복음(마 16:13-28)과 마가복음(막 8:27-9:1)에 동일하게 나온 것으로 보아 복음서 기자들은 모두 예수의 그리스도직이 수난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의 구원 사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삐까번쩍한 군대를 끌고 나타나 로마를 쳐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이어 제자도를 가르치시는데, 예수를 따르려는 자들은 누구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 핵심에 있다(23절).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를 따르는 자들 역시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자들은 가장 값진 구원을 얻을 것이다(24, 25절). 하지만 예수를 부끄러워하는 자들은 버림 받을 것이다(26절).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27절). 나는 이 말씀이 배치상 바로 이어 나오는 변화산 사건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누가는 "이 말씀을 하신 후" 8일 정도가 흘렀다고 굳이 쓰고 있는데(28절), 8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할례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창 17:12). 어쩌면 이 시간을 명시함으로써,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하나님의 나라"를 처음으로 맛본 사람들임을 표현하는 게 아닐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와 함께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랐는데(28절), 그곳에서 예수의 용모가 변하였다(29절).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실 것에 대해 예수와 이야기를 나눴다(30-31절). 함께 있던 자들은 졸다가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깼다(32절). 베드로는 예수와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겠다고 말했는데(33절), 그러자 구름이 덮이며(34절)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35절). 소리가 그치자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지고 예수만 남았다(36절).


변화산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나는 27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영광"이라는 단어를 주목하고자 한다(31, 32절). 예수께서는 영광스러운 모습이 되셨고(29절), 마찬가지로 영광을 입고 온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다(30절). 구름(34-35절)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때 쓰는 장치였고, 메시아 역시 구름을 타고 오신다(단 7:13). 이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가 밝히 볼 모습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35절)가 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31절)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앞의 이야기와 만난다. 예수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시지만, 그는 많은 고난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 이 아이러니가 예수의 그리스도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늘 본문은 예수가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셨는지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우리가 보게 될 것은(27절)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다(29-31절).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에게 덮일 것이고(34-35절) 그 안에서 우리는 그 분의 영광을 기뻐할 것이다. 예수는 바로 그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려고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35절)이요 그리스도(20절)이시지만, 그는 고난과 죽음으로써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22, 31절).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른다(23-26절). 왜냐하면 그 영광을 맛보았기 때문이다(27절). 나 역시 구원의 기쁨을 알고 그 나라의 영광을 맛본 사람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원한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 따르는 길, 그 길 끝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을 다시 만나뵙길 고대한다.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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