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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지극히 작은 자 하나

로보스 2018. 6. 21. 12:28

오늘 점심에 식사를 하러 학교 근처 식당가에 나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앞을 보니 어느 흑인 분이 휠체어에 앉은 채 길 한가운데 버티고 있다. 눈을 안 마주치고 재빨리 곁을 지나쳐 가려는데 그 분이 말을 거신다. "Excuse me." 못 들은 척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Excuse me, sir? Sir!" 그 분의 목소리가 내 뒤로 점점 멀어진다. 마음은 복잡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바쁜 하루를 보내며 그 일을 잊은 채, 저녁에는 습관대로 수요예배에 나와 앉았다. 찬양을 부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주가 영광 받으시도록" 가사에 울컥했다. 예배 후 개인 기도 시간에 그 가사를 묵상하며 입을 열었다. "하나님,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해요." 그 순간, 주님은 오늘 낮의 그 사건이 떠오르게 하셨다. "그 때 그 자리에서 너는 누구의 영광을 구했니?" 그리고 준엄한 말씀이 가슴을 후벼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1-45)


아아, 그 때 그 휠체어에 앉아 계시던 분은 주님이셨다. 나는 바로 주님을 무시한 것이었다. 나는 주님의 얼굴을 못 본 척 했고, 주님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했다. 왜? 나의 주님은 가난하지 않아. 나의 주님은 더럽지 않아. 나의 주님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아. 나의 주님은 흑인이 아니야. 나의 이 악한 생각이, 나의 이 강퍅한 생각이,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았다.


그리고 또 한 사건이 떠올랐다. 어제 연구실 동료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에서 구걸하는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액센트도 심하고 말도 빨라서, 솔직히 나는 그 분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내 옆의 동료는 주머니를 뒤져 가지고 있는 동전을 다 털어서 그 분에게 건넸다. 그 분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했고, 동료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와 하던 대화를 이어갔다. 이 동료는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을 감명 깊게 읽었다며, 도대체 나는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행하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다가도,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명확한 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겁먹고 내뺐다. 룻기를 읽으며 인애를 묵상했고, 말라기를 읽으며 계명 준수를 깨달았다면서, 무엇이 내 삶에서 드러나고 있는가? 내 믿음에는 도무지 행함이라는 것이 있는가?


기도 시간이 끝나도록, 그저 괴로움의 탄식만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주님을 외면했다. 나는 주님을 무시했다. 나는 주님을 모른다 했다. 모태신앙이면 무엇 하고, 성경 지식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아닌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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