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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4:12-17

로보스 2013. 4. 18. 22:58

여인은 다윗에게로부터 원하던 답을 얻자마자(삼하 14:11) 자신이 진짜 말하려고 하던 메시지를 전한다(12절). 그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다윗의 판결을 압살롬에게 대입시키며(13-14절), 자신이 다윗에게 나온 이유가 다윗의 판결을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15-17절).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성경이 드고아 여인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제는 성급하게 드고아 여인을 인간의 지혜를 좇아 율법을 어기게 하는 존재로 간주했지만, 오늘 본문을 꼼꼼히 뜯어보니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온 것이 악한 일이었는가? 아니면 압살롬을 온전히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악한 일이었는가? 전자가 맞다면 요압과 드고아 여인은 비난 받아야 할 테지만, 후자가 맞다면 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내가 헷갈리는 이유는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다른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드고아 여인은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주장한다(14절). 이는 베드로의 발언과 비교해 볼 만 하다.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b)


압살롬이 죄를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이해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 살인자에 대한 도피성까지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이 압살롬을 철저하게 심판하길 원하셨을까? 그리고 그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압살롬이 반역한 것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에 짐작 밖에 할 수 없지만, 나는 차라리 압살롬을 온전히 용서하지 않은 다윗의 태도가 압살롬의 반역을 불러온 것은 아닌가 싶다. 요압과 드고아 여인의 설득 덕분에 그술에 거하던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삼하 14:23). 하지만 다윗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삼하 14:24), 자그마치 2년 동안 압살롬은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삼하 14:28). 이 사건 직후에 압살롬의 반역 사건(삼하 15장)이 기록된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지혜로운" 드고아 여인의 말처럼, 내쫓긴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13절). 선과 악을 분간하는(17절)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받아 내게 죄를 범한 사람을 온전히 용서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마 18:22) 하지 않으셨던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게 관대해진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내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하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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