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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간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표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1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표적(2-4절)과 나병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표적(6-7절)을 허락하신다. 이 표적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타나셨음을 드러내는 것이다(5절). 첫 표적을 믿지 않는다 해도 두 번째 표적은 믿을 것이요(8절), 이 둘조차 믿지 아니하면 나일 강 물이 피가 되는 표적까지 보여주실 것이다(9절). 본문의 표적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었기에 '표징'이 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이 증거로 함께 ..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장대한 프로젝트를 보여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17절) 그들이 그 말을 듣고 모세를 따를 것이다(18절). 모세와 장로들이 애굽 왕에게 광야로 떠날 것을 구하면(18절) 애굽 왕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19절).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이적을 보이실 것이고(20절) 이를 통해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에게 물품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21-22절). 오늘 본문에서는 기적과 인과의 조밀한 병직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기적을 남발하는 분이 아니시다. 예를 들어 초자연적인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들어 가나안 땅에 보내실 수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셨다. 본문을 보라. 하나님의 일에는 항상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인과 관계가 존재..
모세는 자신을 쓰려 하시는 하나님께 그 분에 대해 여쭌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신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13절) 그러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스스로 소개하신다(14절). 사람이 만든 신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이어 하나님은 그 "스스로 있는 자"가 어떻게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셨는지 설명하신다. 하나님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은 이름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칭호이다(15절). (동시에 하나님은 스스로 "여호와(יהוה)"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라는 표현을 축약하여 부르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
미디안 땅에서 장인의 양 떼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1절) 모세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2절). 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떨기나무가 타버리지 않는 "큰 광경"을 보고 놀라워하며 그리 향한다(2-3절).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로 응답하였다(4절). 하나님은 그에게 거룩함에 대한 예의를 갖추라고 명하셨고(5절), 이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신다(6절). 모세는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었는데(6절), 이 짧은 장면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히 접할 수 없는 '절대 타자'이시다. 모세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
미디안으로 도망간 모세는 스스로를 "나그네"로 인식하고 있었다(22절). "애굽 사람"(19절)인 그는, 익숙한 애굽 땅이 아닌 새로운 땅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도움의 손길을 체험하게 된다. 본문은 "미디안 제사장"을 소개한다(16절). 비록 이방 제사장이었지만 성경은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딸이 일곱 있었다는 표현(16절)은, 어쩌면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이었음을 나타내는 힌트일는지도 모른다. 모세는 그 제사장의 딸들에게 인애를 베풀었고(16-19절), 제사장은 모세에게 인애를 베푼다(20절). 이런 아름다운 상호 인애 가운데 '기쁨'이 자라났다(21절). 성경이 하나님의 복으로 인정하는 '결혼'과 '출산'이 모세에게 일어난다(21-22절). 한편 모세에게 일어난 이러..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쫓겨나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살해했고(11-12절), 그 소식이 애굽 왕의 귀에 들어가자 이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15절). 흥미로운 것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형제"(11절), "동포"(13절)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볼 때, 히브리 사람이 당하는 고난(11절)에 분노하는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공명할 수 있는 자였다. 다만 그는 아직 "두려워하"는 자였고(14절), 이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신적 소명이 필요했다. 과연 본문이 날샘의 설명처럼 모세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은 그저 ..
출애굽기 1장에서 애굽 왕의 폭정을 설명한 기자는, 이제 구체적인 내러티브로 들어선다. 레위 남자가 레위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다(1절). 이는 출애굽기가 기록되던 당시를 생각해 볼 때, 모세가 순수한 레위 혈통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세는 "잘생긴" 아이였다(2절). 이 역시 신적 축복으로 간주되었다. 즉, 모세는 태생부터 순수한 혈통에 하나님의 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가 모든 남자 아이를 "나일 강에 던지"라고 명령했으니(출 1:22), 모세의 부모는 이를 따라야 했다. 그들은 단순히 아이를 던져서 죽이는 대신 갈대 상자에 넣어 그 운명을 살펴보기로 했다(3-4절). 이 상자는 애굽 공주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5절) 그녀는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삼는다(..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두려워 한 애굽 왕은 그들에게 엄한 일을 시키는 한편(출 1:12-14) 직접적으로 그 후손의 수를 줄일 계략을 꾸민다. 이는 히브리인의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리는 것으로, 이로써 이스라엘의 병력 가용 인구가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동시에 점차 히브리인의 수가 감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굽 왕은 우선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리라는 명령을 내리는데(15-16절), 이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다(17절). 여기서 이들이 누구를 참된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지상의 통치자는 하나님보다 우선할 수 없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
그간 휴가를 다녀오는 통에 큐티를 아예 쉬어버렸다. 7월 1일부터 다시 큐티를 시작한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에서 이어지는 책이다. 창세기는 요셉의 죽음으로 끝나는데, 출애굽기는 그 이야기를 받아 애굽에 정착한 야곱의 가족들을 소개한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온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을 제외한 열한 아들들의 이름이 열거되고(1-4절), 그들의 가족들이 도합 70명이었음이 기술된다(5절). (여기서 아들들의 순서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일 듯 하나, 출생순서가 아니라 모친의 위치에 따라 소개되고 있음만 지적하고 넘어간다.) 이제 이들의 시대는 끝났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다(6절). 이젠 애굽의 통치자조차 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8절). 하지만..
사도 바울은 지난 본문에 이어 형제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다른 이의 행동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각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들었다. 이제 바울은 논점을 보강한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속한 자라면 누구나 그 삶과 죽음을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7절) 주를 위해 바친다(8절).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9절). 따라서 한낱 종에 불과한 우리가 주인과 다른 종 사이의 관계를 따지고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10절).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서는 날(10절), 각자가 하나님과 회계할 것이다(11-12절). 다른 이의 행실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직무에만 책..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1절)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로마 교회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채소만 먹는 자들과 모든 것을 먹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고(2절),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과 모든 날을 동일하게 보는 자들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5절). 여기서 바울의 해결책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서로 무시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을 권면한다. 이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3-4절).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행동이 어떻든 다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는 것이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는 것이다(6절). 따라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각 사람은 하나님..
결국 밀려서 로마서 13장 전체를 묵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네. 그 동안의 맥락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면,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거룩한 산 제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롬 12:1)? 12장에서는 교회 내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설명하였고, 이어 "원수"를 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어쩌면 바울은 "박해하는 자"(롬 12:14), "원수"(롬 12:20)를 언급하면서 "위에 있는 권세들"(1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로마 제국에 대하여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다(1절). 이는 하나님의 통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1절..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산 제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 바울은, 이제 원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세상은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갚으라고 가르치지만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권면하며(17절), 또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권면한다(18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원수가 생겼을 때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19절) 그 원수를 사랑으로 품으라(20절). 바울은 이를 명쾌한 한 마디로 정리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바울의 마지막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린다. 저 말을 뒤집어 보면 원수를 직접 갚는 것,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에게 지"는 ..
바울은 "거룩한 백성"이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9a절, NIV). 이 문장이 오늘 본문을 관통할 수 있는 핵심 문장으로 보인다. 즉, 바울은 거짓이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첫 번째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면한다(9b절). 이 구절은 주의를 요하는데, '악'과 '선'을 단순히 법적인 개념으로 해석해 버리면 뒷부분 본문과 어울리지 않게 된다. 나는 여기서 '악'과 '선'이 결국 사랑의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선'이요,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악'이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바울은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주제들을 교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모두를 관통하는 ..
지난 본문에서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권고한 바울은 이제 본격적으로 거룩한 백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그 중에서도 교회 내 은사의 사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바울은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 권위를 통해 권면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3a절). 그 권면은 무엇인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이다(3b절). 말이 조금 모호하지만, 이후에 나올 내용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합당하게 처신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바울은 교회를 "몸"으로, 각 성도를 "지체"로 비유한다(5절). 몸의 각 지체는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4절).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로마서 11장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관해 이야기한 바울은, 새로운 주제로 들어선다. 새로운 주제는 바로 '교회'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 앞에 하나가 되었다면, 그 하나 된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바울은 구약의 제사 대신 우리 몸을 드리는 제사를 이야기한다. 이것이야말로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이다(1절). 혹여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바울은 바로 이어 몸으로 드리는 제사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것이다(2절). 바울의 논점은 간단하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이 세대..
지난 본문까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설파한 바울은 찬양을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의 불순종을 인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고, 이를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복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지혜로 이해할 수 없는 이 놀라운 경륜을 바울은 어떻게 묘사하는가?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고 고백하며 인간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33절).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도, 하나님께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34절). 이어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한다. 누가 하나님께 보답을 받았다고 할 수 있..
바울은 본문에서 "신비"를 이야기한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우둔하게 되었고, 결국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다(25-26절).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로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한다(26-27절). 인용된 구절은 이사야 59:20로, 바울이 인용한 것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사 59:20) 하지만 대의는 같다. 결국 언젠가 이스라엘에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방인 독자들에게 유대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복음에 관한 태도만 보면 "원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병치시킨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계시다. 바울은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인자하심이 있다고 말한다(22절). 본문은 바울이 하나님의 섭리가 숙명론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덧붙인 설명으로 보인다.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조차 믿음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접붙이실 것이다(23-24절). 이는 접붙이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은 믿음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에서 지금은 인자하심에 놓인 우리가 언제든 믿음을 잃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하나님의 준엄하심에 직면하게 될 것이..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로마서의 독자는 이방인이었다(롬 11:13). 따라서 로마서 11장을 잘못 읽으면 유대인들은 버림 받았고 이방인들이 선택 받았으니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무시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바울은 이런 자세를 방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곡식이 거룩하기에 그로 만든 떡덩이가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기에 가지가 거룩하다(16절). 우리의 거룩함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첫 곡식",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 우리 주를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다. 뿌리가 우리를 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18절). 바울은 가지와 뿌리의 비유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본디 하나님으로부터 진액을 받던 일부 가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