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큐티 (1131)
Lovos credit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겟세마네의 기도를 다루고 있다. 본문을 읽으면서 다른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수의 괴로움이다. 그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고(33절),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심경을 털어놓으신다(34절). 누가는 심지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말하고(눅 22:44),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증언한다(히 5:7). 예수께서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괴롭게 기도하셨는가?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다(35절). 그는 "나의 원"과 "아버지의 원"이 충돌하는 것을 경험했고(36절), 이로 인하여 말로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셨던 것이다. (조직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예수께선 본문에서 두 가지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절)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8절) 각각 절망과 소망의 선포인 셈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첫 번째 말씀만 가지고 흥분한다. "주님, 저를 뭘로 보세요? 저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의기양양해 했지만, 결국 첫 번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다(막 14:50). 이 때 그들은 소망의 두 번째 말씀을 기억해야 했지만, 끝내 기억하지 못했기에 절망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저녁 기도 중에 불현듯 말씀이 하나 떠올랐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 12:7..
오늘 본문은 최후의 만찬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먼저 예수께서는 떡을 떼어 나눠주시며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셨고(22절), 이어 잔도 나눠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다(24절). 오늘 본문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예수께서는 이를 계속해서 시행하여 당신을 기념하라고 명하셨고(눅 22:19), 이것이 성찬식의 뿌리가 된다. 떡과 포도주는 본래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이 즐거운 음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다. 우리가 즐기는 떡과 포도주는 사실 예수의 몸이요 피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예수의 수난을 대가로 지불하고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어떻게 잡히실 것인지에 대해 예언하신다. 자신이 총애하시던 열두 제자 중의 한 명이 그를 배신할 것이다! 본문은 열두 제자와 예수 사이의 가까운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예수께서 누구로부터 배신 당하시는지 깨닫게 한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음식을 드실 때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셨다(17절). 본래 유월절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출 12:3). 따라서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를 열두 제자와 함께 하셨다는 것은 예수께 이들이 가족과 같은 존재였음을 암시한다. 다른 본문의 "제자들"이 반드시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그 열둘(the Twelve)"을 명시하여 그들과 예수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예수를 배신하는 자는 "그..
"유월절 양 잡는 날"에(12절)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 자신의 떡과 피를 주실 만찬을 베푸신다. 우리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준비할 뿐이다(16절). 이 애 이 애 걱정 마라나도 같이 쓸어주마나 위해 쓸자는 그 방내가 쓸어 너를 주고닦다가 닳아질 네 맘내 닦아주마 쓸지 닦지 하던 마음그것조차 맘뿐이고님이 손수 쓸으시고나까지도 앉으라시니내 자랑이라곤 없소이다참 없소이다 - 함석헌, 일부
말세에 관한 설교가 끝나고, 이제 마가복음은 본격적인 클라이맥스로 들어선다. 본문에서는 예수를 둘러싼 흉계를 앞뒤에 배치(1-2, 10-11절)하고 그 사이에 "장례 준비"를 넣어(3-9절) 긴박감을 조성하고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 계속해서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을 빚자(막 11-12장) 마침내 이들은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했다(1절). 그 와중에도 이들은 "민란"을 두려워하는데(2절), 이로써 이들이 의로운 마음으로 이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접근한 것은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였다(10절). 그는 돈을 받고 예수를 함정에 빠뜨릴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11절). 유다가 갑자기 왜 예수를 배..
지금까지 설명한 말세의 징조를 가리켜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30절). 이는 명백히 인간의 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아직까지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초대 교회에서도 예수의 예언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베드로의 해석을 따르자면, 예수의 말씀에서 "이 세대"는 주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
본문은 "그 때"에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는 부분(24-27절)과 이에 대한 경고를 말씀하시는 부분(28-29절)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그 때에"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하는데(24, 26, 27절), 이는 단순히 말세 전체를 통칭한다기보다 앞 구절에서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순서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영어로 하자면 then). 지난 본문에서 예언되었던 대환난이 끝나고 나면 이 땅의 천체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24-25절). 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물론 문자 그대로 해와 달, 별이 빛을 잃고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떨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나는 이 표현이 어느 정도 상징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천체들을 경외해 ..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그리스도", 즉 구원자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것이다(21절). 그 자칭 구원자는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할 것이다(22절). 이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단 교주들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단 교주들 역시 이와 같은 거짓 그리스도/선지자의 일부겠지만, 무엇보다 분별력이 필요한 것은 기독교의 탈을 쓰고 선포되는 거짓 복음들이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삼가라"(23절)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의를 당부하신다. 기독교의 탈을 쓰고 선포되는 거짓 메시지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깨어 있는가?
오늘 예수께서는 "환난의 날"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이 날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환난을 보여줄 것이다(19절). 이 때가 얼마나 끔찍한지 몸을 움직이기 힘든 어머니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고(17절), 겨울에 일어난다면 큰 재앙이 될 것이다(18절). 그나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기에 우리가 완전히 멸절되지는 않을 것이다(20절). 그 환난은 언제 일어나는가? 예수께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 그 징표라고 말씀하신다(14절). 이는 다분히 다니엘서를 반영한 표현이다. 다니엘은 그가 받은 환상 중에서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두 번 언급하는데(단 11:31, 12:11), 이는 일차적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의 통치자였던 안티오코스 ..
말세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쳐오는 극심한 핍박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제자들은 많은 이들 앞에서 치욕을 당하고 권력자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9절).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이며(12절),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13절). 왜 이런 환난이 있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9절)라고 답하신다. 무슨 증거를 말하는 것인가? 그 다음 구절이 이에 대한 답을 준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10절) 제자들은 많은 이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는 그 자리에서 그들 자신이 복음의 증거가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 치욕을 도구로 사용하사 만국에 복음..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나가"셨고(1절),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다(3절).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것을 묘사한 에스겔 말씀이 떠올랐다(겔 10:4; 10:18-19; 11:23).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을 떠나셨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심판자로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다. 하나님이 떠난 성전에는 무엇이 임하는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는 참혹한 심판이 임할 것이다(2절). 그 때에는 미혹이 기승을 부릴 것이고(5-6절), 곳곳에서 재난이 일어날 것이다(7-8절). 과연 이 때는 언제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구체적인 예로부터 구체적인 시기를 제시하면서 그 때가 말세라고 주장한다. (사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예수께서 성전에 계실 때에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신 후 헌금하는 사람들을 보셨다(41절). 나는 마가가 이 본문을 시작할 때 예수의 행동을 언급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이 '앉는다(καθίζω)'는 단어가 마가가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할 때도 사용한 단어이기 때문이다(막 16:19). 즉, 어쩌면 마가는 예수께서 헌금함 앞에 앉으셨다는 표현을 통해 헌금함 앞에 통치자/심판주로서 심판을 내리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심판주는 여러 부자(41절)와 한 가난한 과부(42절)를 보시고 판결을 내리신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43절) 어째서 그런가?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서 일부를 떼어 넣었지만 과부는..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서기관들에 대한 적개심을 유감 없이 드러내신다. 서기관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문안 받으며,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한다(38-39절). 이는 모두 자신이 드러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교만한 행동들이다. 서기관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다(40절). 자기애에서 비롯된 교만은 필연적으로 이웃에 대한 수탈을 수반한다. 하나님은 교만도 이웃에 대한 수탈도 용납하지 않으시기에,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할 것이다(40절). 어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 나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사람이 인정해주고, 사람이 ..
예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었지만(계 22:16) 동시에 다윗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께서 스스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실 때와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할 때(35절)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는 말이다. 서기관들은 아마 다윗을 그리스도보다 높은 위치에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다윗의 통치를 온전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저 그 통치를 "회복"하는 존재였다. 즉, 다윗이 완전한 형태의 통치를 펼쳤고, 그리스도는 그것을 그대로 모방할 것이라는 이해가 그들 사이에 편만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통치는 완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좀 더 완전한 통치의 모형에 불과했다. 완전한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루실 수 있다. 다윗이나 아브라..
본문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있었던 대화를 전한다. 이번에는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 묻는 장면이다(28절). 그의 질문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였다. 하지만 그는 앞선 종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를 시험하려는 의도에서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도리어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았기에 좋은 답을 얻기 위해 질문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대계명으로 답하시고(29-31절), 서기관 역시 이에 대해 맞장구를 친다(32-33절). 여기서는 이 두 대답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 각 대답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하나님이 유일하시다는 전제와, 그에 딸린 하나님 사랑의 계명, 그리고 이웃 사랑의 계명이 그것이다. 예수께서는 앞의 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27절) 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는가, 산 자의 하나님을 믿는가? 나는 2000년 전 죽어서 끝난 예수를 믿는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는 예수를 믿는가?
예수와 종교 지도자들 간의 긴장이 계속해서 묘사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세금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트집 잡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13절) 새로운 질문을 준비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14-15절) 그들은 예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리는 말을 덧붙였지만(14절) 예수께서는 "그 외식함을 아"셨다(15절). 예수께서는 이 질문이 시험인 걸 아셨지만(15절), 그들에게 답을 주셨다. "동전에 누구의 형상과 글이 새겨져 있는가?"(16절) 바로 황제의 형상과 글이었다. 그리고 예수의 명답이 등장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7절)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
오늘 본문은 종교 지도자들이 걸어온 시비를 멋지게 넘긴(막 11:27-33) 예수께서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장면을 소개한다. 오늘 본문도 "비유"였지만(1절), 쉬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비유였기에 그들조차 그 의미를 깨닫고 분노하였다(12절). 본문은 포도원을 배경으로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의 신경전을 그린다. 본문의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 혹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통치권을 잠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양하신 것(롬 13:1)처럼, 포도원 주인은 잘 만들어진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1절).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에게 여러 차례 종들을 보낸다. 하지만 농부들은 이 종들을 때리고 능욕하고 죽인다(2-5절).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구약의 선지자들을 상징하며, 종..
본문은 예수와 종교인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다루고 있다. 종교인들, 즉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27절)은 예수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28절)을 하는지 궁금해 했다. 여기서 "이런 일"이란 표면적으로는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가 일으킨 여러 사건들, 예를 들어 성전 정화(막 11:15-17) 등을 가리키지만, 마가복음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이것이 자신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였기에 예수를 견제했다. 예수는 자신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마 28:18), 그 답을 그들에게 제시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그는 그들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30절) 그들은 이 질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