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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5:26-32 본문
오늘 본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조롱 받으시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는 만방에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되었다(26절). 하지만 그의 양쪽에는 위엄 있는 신하들이 도열하는 대신 "강도 둘"이 함께 못 박혀 있었을 뿐이다(27절). 그리고 만백성이 그 앞에서 절하는 대신, "지나가는 자들"(29-30절)과 "대제사장들"(31-32절), 그리고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32절)은 그에게 조롱과 모욕을 던졌다.
조롱하는 자들의 말을 살펴 보면, 그들이 은연 중에 진리를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나가는 자들은 예수에게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말을 던진다(29절). 이는 결국 성전 되신 예수의 육체가 사흘 만에 부활함으로 성취가 되었다(요 2:19-22). 또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며 조롱한다(31절). 하지만 이는 실로 참이다! 그는 자신을 구원하지 않음으로써 남을 구원한 자였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32절)가 되셨다.
이들이 이런 진리를 말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원'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구원이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30, 32절). 예수께서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으셔서 안 하신 것일까? 만약 그가 그들의 주문대로 십자가에서 내려왔다면, 인류 구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예수께서 그 온갖 조롱과 고통을 참아내시면서 이루고자 하신 구원, 나는 그 의미를 바로 깨닫고 있는지 돌아본다. 어쩌면 예수를 조롱했던 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의미를 왜곡하고 뒤틀어서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정적인 카타르시스가 구원인가. 현세의 기쁨과 평안이 구원인가.
이 세상 헛된 영화 날 미혹할 때에
주 예수 크신 사랑 늘 들려 주시오
천국의 빛난 영광 내 눈에 비칠 때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