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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6:30-34 본문
잠시 세례 요한의 이야기(막 6:17-29)로 샜던 마가는, 다시 예수의 사역으로 돌아온다. 오늘 본문은 막 6:13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제자들은 예수께로부터 권능을 받은 후 나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쳤다(막 6:12-13). 그리고 예수께로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다(30절). 이야기를 들은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휴식을 주신다(31절). 이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창 2:2, 출 31:17)과 같은 맥락에 있다. 성실히 일한 일꾼은 그 다음 일을 위해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은 휴식을 취하러 배를 타고 이동한다(32절).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들의 이동을 본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간 것이다(33절). 배에서 내리니 "큰 무리"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34a절). 이제 예수는 어떻게 하실 것인가? 일하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당신의 규칙을 스스로 어기실 것인가?
그랬다. 예수는 거침 없이 그 규칙을 어기시고 그들을 가르치셨다. 왜 그러셨는가? 그들을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34b절). 이 짧은 이야기 안에 예수께서 율법과 그 준행에 대해 가지고 계신 입장이 드러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율법을 어기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율법을 반대하는 분인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도리어 스스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는 분이라 선언하셨고(마 5:17-18), 세세한 율법 규칙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마 23:23). 이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율법 그 자체가 유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cf. 롬 7:7-13).
그렇다면 예수께서 율법을 어기신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 규정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따르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막 3:1-6에 실린 치유 기사를 읽어 보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세부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셨는지 보면 좀 더 명백하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마 22:34-40). 따라서 모든 계명들은 이 둘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세칙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율법의 대의를 이해하고 그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바라보면, 예수의 행동을 좀 더 쉬이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유익을 위해 일한 후에 쉬라는 '율법'을 친히 만드셨다. 하지만 이것이 이웃 사랑과 충돌할 때, 예수께서는 그 율법을 주저 없이 버리셨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율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분명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기준이었을 텐데, 이제는 그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한다. 우리 주님처럼,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율법이든 아낌 없이 내려놓는 내가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