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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6:7-13 본문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는 장면을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이었고(7절), 그 권능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예수께서 하신 사역을 그대로 수행하였다(12-13절).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사역에 능동적으로 동참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들을 파송하실 때 내리신 명령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쉬이 짐작하기 어려운 명령들이 많다. 이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찾아내길 원한다.
먼저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다(7절). 이는 눅 10:1에서 70인을 파송하실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 원칙이었다. 단순히 생각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씩 보내는 것이었을 텐데, 굳이 둘씩 보내신 이유가 있을까? 복음서에서 그 답을 찾기는 힘들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힌트를 좀 얻을 수는 있겠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9-12)
즉 둘씩 보내신 이유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이신 동시에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시험은 받으셔도 죄를 짓지 않으실 수 있었지만(히 4:15), 나약한 우리는 "홀로 있어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하다. 예수를 직접 뵙고 예수께 직접 배운 제자들조차 둘이 함께 해야 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는가?
다음은 자발적 가난을 명한 부분이다(8-9절). 이 부분은 얼마나 중요했는지 평행 본문인 마 10:9-10, 눅 10:4에 표현만 조금씩 바꿔서 동일하게 나온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마가복음에서는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 10:10)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눅 10:7)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먹이신다. 결국 다른 것을 준비하지 말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 힘으로 살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10-11절의 이야기는 10절이 "또 이르시되"(καὶ ἔλεγεν αὐτοῖς)로 한 번 끊고 시작하는 걸로 보아 앞의 이야기로부터 독립된 명령이다. 나는 이 명령의 핵심을 '권능'으로 이해하고 싶다. 먼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각 마을에서 한 군데 집에만 머물라고 명하신다(10절). 이는 권능을 가진 자가 경홀히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함 아닐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그 집에 평안을 임하게 할 권능이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마 10:12-13, 눅 10:5-6). 또한 제자들은 저주를 내릴 권능이 있었다(11절). 예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좀 더 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신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정리해 보자면, 본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연약함 사이에 놓인 그리스도인의 긴장을 잘 드러낸다. 분명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사역을 그대로 할 수 있었다(12-13절). 또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은 자신이 머물던 곳에 축복도 저주도 할 수 있었다(10-11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여전히 연약한 육신이기에 "둘씩 둘씩" 다녀야 했고(7절), 의식적으로 인간의 힘에 의지하지 않아야 했다(8-9절).
나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면서 이와 같은 긴장을 겪는다. 분명 하나님이 내게 능력을 부으셨기에 내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연약한 인간인 나는 유혹과 시험 속에서 쉬이 넘어지고 만다. 본문에서 주님이 나와 동일한 인간이었던 제자들에게 이 두 가지를 모두 말씀하신 것을 보면서,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한 인간성을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깨닫는다. 더욱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자(딤후 4:7).